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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대법원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지난 16일 판결은 최근 이어지는 정치적 판결의 결정판이다. 대법원도 인정하는 이 사건의 팩트는, 피고인이 성남시장 재직 시 보건소장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법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방송 TV토론에서 상대 후보자가 “형님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느냐”고 묻고, 피고인이 “그런 일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엄연한 허위 발언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뒤집기 위해서 대법원이 동원한 법리는 참으로 견강부회적이다. 심지어 독심술까지 동원해 상대 후보자의 질문에 ‘직권남용이나 강제입원의 불법성을 확인하려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고 볼 여지가 있고, 이를 부인하는 의미로 피고인은 답변했다’고 질문자와 피고인의 속마음까지 살펴 논증했다. 사법사에 전대미문인, 참으로 희한한 독심술 판결이다.

더 나아가, 선거토론에서 즉흥적·소극적 거짓말까지 처벌하면 표현의 자유와 선거운동의 자유가 위축되므로 표현의 자유가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선거의 공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확한 표현과 소극적인 허위 발언 모두에 법적 책임을 묻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한다. 또, 토론회에서 한 발언으로 선거 결과가 사법적 판단에 좌우되는 것은 국민의 자유의사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 이념이 훼손될 우려도 있다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선거법에 허위사실 공표죄 규정과 선거소송 제도는 왜 두었겠는가. 피고인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만들어 낸, 참으로 구차한 논리다. 소극적인 사실 왜곡이 없이는 활발한 토론이 불가능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이다. 과장 표현이나 소극적인 거짓말이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이라는 논리는 법을 정치의 시녀로 여기는 주장이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능을 오해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의 엄격한 통제 아래서만 꽃필 수 있는 통치구조의 기본원리다. 법은 결코 정치의 시녀가 아니다. 정치의 탈선을 막는 장치가 법이고 법치주의다. 정치가 법의 시녀일 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제 기능을 하고 민주주의를 빙자한 정치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대법원은 판결의 도입부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선판례를 인용하면서 선거방송 TV토론의 중요성과 TV토론이 유권자 판단에 매우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따라서 대법원의 지적대로 토론회에서 나오는 후보자의 질문과 답변 및 기타 발언 내용은 조금도 거짓이 있어선 안 된다. 토론에서 나온 질문이나 답변이 즉흥적·적극적인 것이든 소극적인 것이든 거짓이 조금이라도 개입하면 유권자의 판단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강조한 이런 당연한 법리는 유무죄 판시 부분에서 논리가 비틀어졌다. 정해진 무죄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논리 개발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헌법의 삼심제도는 사법절차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에 더 가까이 가려는 제도적 표현이다. 대법원 판결의 중요성은 그만큼 크다. 대법원이 논리를 비틀어 원심의 올바른 판결을 파기 환송한다면 삼심제도는 더는 존재 의미가 없다. 은수미 성남시장 관련 판결에 이은 거듭되는 대법원의 정치적 판결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사법의 정치화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건을 비롯한 쌓여 있는 권력 관련 정치적 사건에서는 또 어떤 희한한 판시가 나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