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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음성파일에 담긴 ‘절규’

최선수 “증거 자료 없다” 해도
조사관은 “증거 필요” 반복만

심석희 사건후 변죽만 울리다
이번에도 사후약방문식 대응

철인3종경기의 기대주였던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그는 용기를 내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최 선수는 증거 자료를 모아 보내달라는 말을 들었다. 끊이지 않는 폭행과 폭언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상황에서 증거를 모을 수 있었을까. 하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이처럼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6일 체육회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통화 음성파일. 지난달 25일 최 선수는 조사관에게 “저희한테도 항상 비행기 값이라고 하고 돈을 걷어갔지, 훈련비로 쓸 거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면서 “알고 보니까 (경주)시청에서 비행기 값을 다 대줬다”고 알렸다. 조사관이 “반박할 증거가 있다면 그걸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최 선수는 “그런 게(반박할 증거) 없다, 지금 저희한테”라고 답했다. 조사관은 또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회에 걸쳐서 얼마를 입금한 것을 정리해서 주시고, 비행기 값이라고 해서 보내준 부분에 대해 추가 증거로 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말했다.

먼지 나게 얻어맞은 최 선수는 폭행, 폭언, 횡령 등을 신고했지만 신고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치안전망 2020’에 따르면 경찰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부터 비롯된 체육계 (성)폭행을 2019년 10대 치안 이슈 중 1순위로 꼽으며, 체육계의 일상화된 폭행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대응은 그해 상반기 악성 폭력 집중 단속 기간을 운영하는 수준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은 대부분 신고에 의존했고, 체육계 관련 폭행 건은 그다지 많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 선수 사망 사건 이후 체육계 폭행에 대한 국민 분노가 재차 촉발하자 경찰은 뒤늦게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철저 조사를 지시하자 경찰청은 오후 체육계 전반의 폭력 행위 등을 수사할 ‘체육계 불법행위 특별수사단’을 구성, 전국 18개 지방경찰청과 합동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늑장대응, 사후약방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자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체육계의 폭력 등에 대처키로 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회의 직후 “신속하게 고 최숙현 선수와 관련된 조사를 진행하고,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6년 전에도 그랬다. 2014년 1월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개설하고, 4개월 뒤 경찰과 검찰 인력까지 더해진 스포츠 4대악 합동 수사반을 설치하면서 폭력 등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공언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김성훈·전세원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박양우(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정옥(가운데) 여성가족부 장관, 최윤희(왼쪽)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건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 회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