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3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김상훈(28·맨 왼쪽) 씨가 장기 기증자 유가족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 뒤 밝게 웃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4년 전 6개월 시한부 판정받고
또래 뇌사자 심장 이식해 새생명
기증자 유족에게 감사 카네이션

“아드님께서 저 같은 이들에게 심장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

“아이고, 우리 아들 왔구나.”

어버이날을 5일 앞둔 지난 3일 김상훈(28) 씨는 자신의 생일날, 특별한 부모님을 만났다. 4년 전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김 씨는 또래 뇌사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아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김 씨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기증자 역시 누군가의 아들일 터. 김 씨는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보내며 장기 기증을 결심한 부모들에게 먼저 떠난 그들을 대신해 카네이션과 함께 어버이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에 3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 공간에서 기증자 유가족 강호(69)·김일만(77)·홍우기(75) 씨를 만났다. 이들은 김 씨를 보자마자 “우리 아들이 왔구나” 하면서 실제 아들을 만난 듯 뜨겁게 안아줬다. 다른 유가족들도 ‘부자 상봉’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총 21명의 뇌사 장기기증 유가족들은 새로운 가족인 김 씨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인연을 맺었다.

김 씨는 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부모님들이 제 얼굴을 보자마자 ‘자기 아들이 왔다’는 말과 함께 스스럼없이 안아줘 너무 감사했다”며 “유가족분들을 만나기 전에 어떤 말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많이 고민했는데 그 마음을 담아 편지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2015년 6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로 간 고 홍윤길(사망 당시 34세) 씨의 아버지 홍우기 씨는 “윤길이가 살아있을 때 매년 어버이날마다 카네이션 꽃을 달아줬었는데 이번에 상훈이가 제 가슴에 꽃을 달아줬다. 생긴 모습도 비슷한 것이 꼭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며 애써 울음을 참았다.

2019년 봄, 당시 23살이던 김상훈(28) 씨는 대학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던 중 자꾸 뒤처지고 숨이 가빠 와 병원을 찾았다. "지금까지 걸어다닌 게 기적"이라는 의사의 말과 함께 진단받은 병명은 ‘확장성 심근병증’. 심장 기능이 10%대로 떨어지는 희귀난치성 심장병이다. 김 씨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고,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상훈 씨는 기능이 다한 심장 대신 들어선 기계 펌프에 의존해 기적적으로 10개월을 버텼다. 그리고 극적으로 심장이식을 받았다. 상훈 씨는 "이식 수술 후 눈을 뜨니 시체처럼 차가웠던 몸에 따뜻한 온기가 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식받은 날인 오는 26일이 제 두 번째 생일"이라며 "꼭 가정을 이뤄 제 몸속에 뛰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새로운 생명을 낳고 부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8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2017년 심장을 이식받고 아이를 출산한 김지은(35) 씨도 지난 4월 30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만났다. 지은 씨는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낳은 딸 홍라율(4) 양과 함께 기증인 유가족 한필수(84) 씨와 양이순(78) 씨 부부를 만났다. 딸 홍 양은 양 씨의 귓가에 "우리 엄마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모녀는 카네이션을 한 씨 부부의 가슴 한편에 달아줬다. 한 씨는 "마치 딸이 달아준 것처럼 고맙고, 애틋하다"고 말했다. 지은 씨는 2020년 심장이식인으로서는 국내 두 번째로 출산에 성공해 홍 양을 얻었다. 또 이달 말에는 국내 최초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는 "기증인 덕분에 라율이와 둘째 튼튼이까지 세 개의 심장이 빛을 보게 됐다"며 기증자 유족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국내에서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 유지)에 의해 직접적으로 장기를 주고받은 이들이 서로의 정보를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본인에게 생명을 나눠준 기증자 유가족이 아닌 또래 기증자 유가족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한 이유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