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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석(1932∼2020)

외할아버지께서 영면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요양병원으로 옮겨가신 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 후 미국에 나와 있는 손녀딸이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한 외할아버지셨다. 그 기쁨을 드린 지 몇 달이 채 안 돼 한국의 가족에게서 비보를 접했다.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야 함에도 나는 이곳에 발이 묶인 채 아린 마음만 달랬다. 코로나19 여파로 보스턴∼인천 직항편이 중단된 데다 발인 전까지 서류를 구비해 해외입국자 격리 면제서를 발급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타지에서 애만 태우는 손녀딸이 외할아버지를 추모하는 법은 이렇게 멀리서나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리는 일뿐이다.

내 유년기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빈틈없는 따뜻함으로 채워져 있다. 이때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내게 가장 선명한 시기이기도 하다.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여름 휴가철이면 항상 엄마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경치 좋은 곳들로 여행을 갔다. 맞벌이인 엄마 아빠를 대신해 외할머니는 내게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사랑을 듬뿍 주셨다. 외할아버지는 겉으로 외할머니만큼 표현하진 않으셔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온전히 느끼게 해주셨다. 외할아버지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유년기 추억은 치과 방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치아 교정 때문에 꽤 자주 치과를 갔다. 그 시절 항상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낯선 서울 천호역 인근 치과를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할아버지는 내 치아 교정을 위해 긴 시간 동안(2∼3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먼 치과를 거의 매주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게 천호역은 우리 집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중에 하나로 인식됐다. 그 일정을 외할아버지와 함께한다는 건 내게 큰 버팀목이자 의지가 됐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께 그렇게 진하고도 소중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도 늘 공부한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더 커서는 결혼하고 미국에 나와 있다는 이유로 외할머니·외할아버지께 살갑게 해드리지 못했다. 얼마 전 외할아버지 생신 때 전화를 드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스럽다. 외할아버지는 구순 가까운 나이에도 매일같이 헬스장을 다니시며 신문을 정독하고 최신 뉴스를 놓치지 않던,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셨다. 무엇보다 외할아버지는 군인이셨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 표현이 남달랐다. 그래서일까. 내게 외할아버지는 ‘신사’ 같은 멋진 분으로 기억된다.

외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참으로 당신다웠다. 흐트러진 모습 없이 주무시다가 조용히 가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를 지극히 사랑했던 외할아버지가 미리 좋은 터를 다져 놓고 외할머니를 기다리시고자 먼저 가신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보스턴은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다. 스치는 바람 한 자락 어딘가에 외할아버지가 지나쳐 가시는 건 아닐까, 깊은 그리움이 사무친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리운 목소리, 외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보스턴에서 외손녀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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