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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숙(1945∼2016)

그리운 어머니. 요즘 천지의 꽃들이 다양한 모양과 향, 색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제가 불러보는 이름은 답을 하지 않고 맑은 미소만 가슴으로 전해져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나의 어머니 김점숙. 그 이름을 부르다 보면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아쉬움이 눈앞의 미소와 겹쳐져 눈물로 한 방울 한 방울 흐릅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은 뒤 누룽지가 남았길래 “엄마 누룽지 드실래요?” 했더니 어머니는 단호하게 “난 누룽지는 안 먹어” 하셨죠.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누룽지를 먹으면 이생의 부모에게서 다시 태어난다” “난 절대로 이생의 엄마에게선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만 애지중지하신 할머니 밑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은 참 힘든 시간을 보내셨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외삼촌이 작고하고 네 자매만 남았을 때도 잘 모이지도 않고 옛이야기도 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6·25전쟁 직후 얼마나 어렵게 살았으면, 힘든 세월에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와 지내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 후 떠났던 작은 시골 마을로 3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외삼촌을 사별한 후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인 어머니는 옛집 터에 새 집을 지을 때 소녀의 미소를 보이며 신이 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방의 전등과 커튼 색, 장식할 그림도 직접 고르셨습니다. 자식들을 다 내보내고 시골집에 방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태어나서 당신 방을 처음 가진다며 좋아하셨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느끼는 ‘어머니 방’의 의미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지도 못하고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고 돌아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데도 잠은 꼭 ‘어머니 방’에서 자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작은 요를 깔고 꼭 끌어안고 잠을 잤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일어나서 넘어져 다치실까봐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냈고 어머니는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이후 어느 날 식사 중에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몇 달 동안 손에 물 안 묻히고 지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전엔 어머니가 누군가의 아이에서 시작해 어른, 엄마가 됐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도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독신인) 저는 아직도 어머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저 과거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눈물 흘릴 뿐입니다. 이렇게 꽃이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날,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햇살에 또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에게 더 친절하고 더 상냥한 딸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딸 허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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