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공정·공정성 제목을 가진 언론사 기사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교육, 대학입시, 부의 대물림 등의 키워드가 연관어로 분석됐다(사진 가운데). 어떤 게 공정한지에 대한 관심 등이 커지고 있다(사진 아래 왼쪽·오른쪽). 공정성연구회·게티이미지뱅크

(20) 복지불공정 및 불공정 종합보고서 <끝>

‘공정’관련기사 빅데이터 분석
교육·대입·富 대물림 등 연관
특히 젊은층 공정성 기준 높아

코로나 통해 한국은 ‘시험대’
기본소득 재원·수혜범위 등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논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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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교육 불평등, 세대 간 격차와 세대 내 불평등, 저출산과 성 평등, 교육과 부의 세습, 취약한 노동시장과 일자리, 행복과 삶의 질 등 거의 모든 층위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19년 1월 이후 4개 주요 언론사 기사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텍스트 마이닝·자연어처리 기반) 결과, 공정·공정성 제목을 가진 기사에 나오는 단어들은 주로 교육, 대학입시, 부의 대물림 등으로 나타났다. 교육 문제를 제외한 공정성 관련 주요 단어는 정치, 투표, 후보자, 기회, 신뢰, 청년, 여성 등이다(그림 참조).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 확인해 본 한국 사회 공정성 담론의 지형도 중심에 교육 공정성 문제가 있다. 통계 처리를 통해 최적의 공정 토픽으로 산출된 9개의 주제 비중 평가에서도 공정성 문제는 대입제도, 조국 사태, 특권, 검찰 수사 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교육 공정성 문제에 집중돼 있다. 교육 공정성은 단순히 입시 불공정을 넘어서 특권 대물림 문제로 연결된다. 즉 정시 확대, 사교육 부담 가중과 같은 현상의 이면에는 특권의 대물림과 사회 불평등의 영속화처럼 더 근본적인 사안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한국 사회에서 더욱 높아진 공정성에 대한 요구도 확인된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와 관계없이 공정성 인식은 사회 일반과 제도, 그리고 검찰 등 기관에 대한 신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이 경향은 특히 청년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포츠계와 문화계에서도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불공정성을 고치라는 요구가 높다.

공정성 확보에 대한 요구는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체계적 차별의 피해자인 여성 문제, 즉 양성평등의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의 공정 보도에 대한 요구도 많은데, 이는 여전히 정치 진영에 따라 양분된 언론과 독자들의 상호 불신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속보 경쟁, 허위정보 확산으로 인한 증오와 혐오의 심화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9년부터 공정성 관련 기사에 나오는 단어들의 연결 양상을 보여주는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 결과도 교육 문제가 한국 사회 공정성 문제의 핵심이며 그 주변으로 다른 문제들이 포진해 있다.

한국 사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가 ‘K-방역’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도 공정성의 핵심 기둥인 공평과 정의가 방역정책 실행 과정에서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확진자 동선에 대한 신속한 추적과 조치, 방역정책의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지 않은 투명한 정보 공개,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한 의료서비스, 사명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무장한 의료진의 헌신적 희생 등은 평등한 제도, 시민성에 기반한 상생의 실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염병의 확산에 맞서 누구나 동등하게 다뤄지고 있고 모든 것이 공개되고 있다는 믿음, 즉 공정성에 대한 확신이 K-방역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논한다. 이 논의에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도 공평과 정의, 공정성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통계 자료와 심층면접 자료 등에 기반한 문화일보·공정성연구회의 ‘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는 2019년 한국 사회의 모습이 2020년 현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육 정책과 입시 제도는 잘살고 더 배운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부와 지위를 물려주는 수단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지가 여생의 삶을 결정하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성 청년과 남성 청년은 각기 다른 이유로 취업과 승진, 그리고 보육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여기며, 상대 집단에 대한 혐오를 키워간다. 노인의 빈곤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인 1위다. 비정규직, 최저 임금 수준의 일자리는 중년과 노년에게 집중되고 있다. 2019년에도 이미 우리가 안고 있던 아픔은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여전히 우리의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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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공정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코로나19 대처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정함이 공공과 민간 부문에 뿌리내리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삶은 윤택해지고 함께 잘 사는 공동체로 가는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OECD 국가에서는 40대 중반까지 행복감이 감소하다가 중년 이후에 회복해 노년까지 이어가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행복감이 20대에 최고를 찍고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떨어지기만 한다. 연령이 높을수록 공정성 인식이 낮아지기 때문에 행복감도 낮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렇듯 실재하는 공정과 공정성 인식은 시민의 태도와 행위에 변화를 만들고 사회 각 부문에서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 이후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내놓는 정책과 제도가 특정 집단의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 또 다른 불공정을 낳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같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각종 기술이 우리의 일과 생활에 빠르게 적용되면서 앞으로의 세상은 훨씬 더 가파르게 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뒤처지거나 실패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며, 준비가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기본소득 같은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도 뜨거워질 것이다. 기본소득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출발선·과정·결과에서 완벽한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 일정 정도의 배려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면서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갑자기 수행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앞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보듯 복지 재원과 국가 재정에의 영향, 수혜 범위, 실효성 등에 대한 공론장에서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제도의 성패는 국민의 이해와 수용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