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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말 가계부채(신용) 잔액이 1611조3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말보다 11조1000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 1분기 증가율이 0.2%, 2분기 1.1%, 3분기 1.0%, 4분기 1.8%를 기록했다가 이번에 0.7%로 그 증가세는 다소 둔해졌다.

가계부채는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금액이다. 가계대출은 일반 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이며, 판매신용은 신용카드사 등 여신 전문기관과 백화점·자동차·가전사 등의 판매회사가 제공한 신용 거래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해진 것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가계대출이 1.1% 늘어난 반면, 판매신용이 6.4%(6조1000억 원)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가세가 다소 둔해졌다고 해서 반길 일은 아니다. 판매신용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 불황’은 경기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부담은 매우 크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우리나라 지난해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3.3%다. 그리고 가계부채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대출을 포함하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 따르면, 그 비중은 95.5%로 대폭 커진다. 이는 43개국 중 7위에 해당한다. 2017년에 BIS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60% 이상이면 장기적으로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80% 이상이면 그 영향이 심해져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그 수준을 크게 넘어서 있어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비자물가지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2019년 12월 0.7%, 2020년 1월 1.5%, 2월 1.1%, 3월 1.0%, 4월 0.1%를 기록하고 있다. 지속적인 물가 하락은 실질이자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가계부채 증가는 가계의 실질적인 이자 부담을 더욱 키우게 된다. 경제성장의 저하로 인해 가계의 소득이 감소하는 한편, 이자 부담이 증가해 감당할 수 없으면 가계들은 빚을 갚기 위해 보유한 주택을 내다 팔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벌어진다면 자산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5조3220억 원이 늘어난 858조2000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이 그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산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 때문에 가계부채의 증가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가 경제위기로 확산되는 것은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에 달려 있다.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가계는 파산할 것이고, 그 파산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부실 채권이 늘어나 금융회사들이 도산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 전체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위기를 겪지 않고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키우는 최상의 방법은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이다. 소득과 일자리는 기업과 기업가의 활동으로 창출되고 늘어난다. 기업과 기업가들의 활동은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적고 자유로울 때 가장 활발해진다. 따라서 기업과 기업가의 활동을 옥죄고 간섭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완화하는 것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