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집무실에서 크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전태일 열사 분신 계기로 노동운동 관심… 노동계 대모 故 이소선 여사의 ‘하나가 되라’ 평생 간직

시·도 교육청과 협약 국가자격시험장 확보난 해소… 마당발 인맥으로 일자리 창출·후배들 학습권 보장 강조

‘전태일의 마음으로 평등한 세상.’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버들다리 위 전태일 흉상 앞에는 양대 노총 위원장과 노동계 인사들이 모였다.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범국민행사위원회 발족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다. 서울 평화시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재단사로 일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산한 전태일. 그의 죽음은 노동계에 큰 울림이 됐고, 그를 통해 노동운동계 후배들은 서로 헌신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지난 2017년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 취임해 굵직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김동만 이사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는 김 이사장에게 매우 뜻깊은 해다.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김 이사장은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해 노조 쟁의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바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다. 입사 후 군에 입대하고 전역한 뒤, 서울 장충동 지점에서 1980년대 청춘을 보냈다. 장충동 지점은 전태일 열사가 일하던 평화시장과 지근거리였다.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 김 이사장은 ‘넥타이 부대’ 속으로 들어가 민주화 투쟁 현장에 참여했다. 해병대 출신의 다부진 체격은 당시 강경 투쟁이 많이 이뤄졌던 국제통화기금(IMF)구조조정 반대투쟁 현장에서 활동하는 데 한몫을 했다.

◇노동계 대모 고 이소선 여사에게서 배운 ‘사람 중심의 리더십’ = 이때부터 김 이사장은 노동운동의 선두에서 ‘사람 중심의 리더십’을 모토로 삼고 있다. 그 중심에는 김 이사장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있다.

김 이사장이 전태일기념사업회와 인연을 맺은 지 25년째에 이르렀다.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을 세우는 데 노력하고 전태일 다리에 있는 동판도 김 이사장의 손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마련됐다. 그러면서 이 여사 생전에는 그가 몸담았던 한국노총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이 여사와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던 막역한 사이가 됐다.

김 이사장은 이 여사와의 마지막에 대해 “노동자들을 위해 계셨던, 큰 바위로 된 부처님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저는 이 여사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세 명 중 한 명이다. 둘째 딸 전순옥 씨, 셋째 아들 전태삼 씨와 함께 장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전태일 열사의 추도식만을 하고 있지만, 독재에 항거하고 노동해방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신 이 여사에 대한 추도식도 같이 만들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 여사가 생전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셨고, 또한 그의 비석에도 새겨져 있는 ‘하나가 되라’는 메시지도 평소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그는 이 여사가 “‘왜 노동계가 분열돼 있느냐. 비행기도, 집도, 옷가지도 모두 다 노동자들이 만드는데, 이렇게 핍박을 받는 시절을 보내는 것은 모두 분열이 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며 “양 노동계도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이 (이 여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하신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소통 리더십’ 결실은 얻지 못했지만… 교착된 현 노사정 관계에 메시지 던져 = 이 여사가 김 이사장에게 전한 ‘하나가 된 노동계’라는 키워드는 현재 교착 국면에 놓인 노사정 대화에 메시지를 던진다. 지난해 조합원 수 규모로 제1 노총의 자리에 오른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틀 안에서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달리, 계속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며 장외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민주노총은 정부와 손잡고 ‘원포인트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려 하고 있고, 이를 분야별 협의체로 확장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소통의 부재에서 온 현 상황과 달리, 김 이사장은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있던 2015년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합의에 이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비록 얼마 가지 않아 김 이사장이 합의안을 파기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책 공조에 나섰지만, ‘9·15 노사정 대타협’이라 명명된 당시 합의는 김 이사장의 33년 노동운동 시절 동안 가장 아쉬웠던 일로 꼽힌다. 합의가 파기됐음에도 김 이사장은 논의 기간 내내 승부처마다 ‘소통의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오기 전인 2014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에 앞서 한국노총 부위원장,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 심판위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국노총 위원장에 2014년 1월 당선된 후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에 대한 정부의 사과 없이는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발언해 재계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걱정한 ‘강성’ 이미지는 재임 이후 ‘화합’과 ‘소통’으로 탈바꿈했다. 정부와 ‘평행선 대치’ 예상에도 임기 내 정부와 협상에서 대타협 수준의 대화까지 끌어낸 것은, 비록 결실을 얻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최근 정체상태에 처한 노사정 대화에 상징하는 바가 크다. 당시 김 이사장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을 끝까지 거부하는 가운데 한국노총 임원진을 소집해 지속적으로 상의했다.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 복귀 결정 과정에서도 한국노총 내 강경파의 반대가 잇따랐지만 끊임없이 설득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는 후문이다. 김 이사장은 당시 합의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사회적 대화의 교본이라 할 만큼 많은 내용과 협의가 있었는데, 당시 노정 간 신뢰 부족으로 결국 파기선언을 했다.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회상했다.

◇공단 이사장 취임 후 끊임없는 ‘열정’… 기능올림픽 나가는 후배들 챙기는 ‘형님’ 이미지도 구축 =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김 이사장은 2017년 12월 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마당발’ ‘터미네이터’ 등의 별명에 맞게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3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하며 쌓은 인맥을 활용해 한 달에 두 번꼴로 일자리 창출, 능력개발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취임 후 지금까지 체결한 MOU는 총 64건이다. 대상도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물론 롯데그룹, CJ푸드빌 등 민간 기업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서울교육청 등 17개 시·도 교육청과도 협약을 맺어 그동안 골머리를 썩이던 국가자격시험 시험장 확보난을 일거에 해소했다. 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각종 자격시험 수험생은 연 400만 명에 달한다.

조직의 숙원 사업 해결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인력공단의 임금·복지 수준은 340개 공기업·공공기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취임하고 보니 임금이 낮은 것은 물론, 직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연수원은커녕 콘도 회원권 한 장 없어 놀랐다”는 김 이사장은 국회로, 기획재정부로 뛰어다녀 강릉 연수원 건립을 위한 예산 199억 원을 확보했다. 약 6286㎡(1905평) 규모의 인력공단 연수원은 올해 착공해 2021년 문을 열 예정이다. 또 인력공단 명칭변경 등 이미지 통합(CI) 개선 작업도 지난해 말 이뤄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국제기능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는 숙련 기술인들의 양성과 복지 개선에 맞춰져 있다. 최근 경북에서 기능대회를 준비하던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 기능강국의 등장에 따라 한국도 ‘1등보다는 일류를 추구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 유관 부처들이 모이는 태스크포스(TF)가 조만간 마련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이미 체육계는 학생들의 학습권도 보장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졌는데, 기능대회에 출전하는 우리 학생들은 학습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메달만 따면 팔자를 고치는 식으로 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정밀 기술을 추구해야 하기에, 시대에 걸맞은 길을 숙련 기술인들에게 열어줘야 한다는 게 그의 포부다.


■ 김동만의 인맥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1978년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한일은행에 입사, 1985년 동 은행 노조 쟁의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동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다만 그 이전부터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하며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 자살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계에 스며들었다. 1998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됐던 그는 2000년 전국금융산업노조의 상임 부위원장을 거쳐 2006년 금융노조위원장과 한국노총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런 경력을 계기로 2008년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계 입장이 고용 관련 분쟁에 많이 반영되도록 노력했다. 이어 2011년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으로 활동한 뒤 2014년 당시 가장 많은 수의 노조 조직원을 거느린 한국노총의 위원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나이 : 61
학력 : 마산상고
이력 : 1978 한일은행 입사, 1985 한일은행 노조 쟁의부장, 2000 전국금융산업노조 상임 부위원장, 2006 금융노조위원장·한국노총 부위원장, 2008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위원, 2011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 2014 한국노총 위원장, 2017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미지 크게보기

전태삼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통해 노동운동에 헌신하게 된 김동만 이사장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와 고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김 이사장이 25대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된 2014년 정기선거인대회 당시도 함께였다. 전 씨는 이후 2015년 노사정 합의에 반대 의사를 펼치며 ‘전태일 전시회’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전 씨의 이런 의사가 김 이사장이 노사정 합의를 파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동만 이사장과 ‘동고동락’한 사이로 노동계에서는 호형호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이사장은 외환위기 직후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몰아치던 1998년부터 이 의원과 함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 몸을 담았다. 이 의원은 1998년부터 2004년 금융노조 위원장을 맡았는데, 김 이사장은 2000∼2004년 부위원장을 지내며 막역한 친분을 쌓았다. 특히 김 이사장은 1999년 이 의원과 함께 수감되기도 했다.

한상균 前 민주노총 위원장

2015년 1월 7일 노사정위원회를 앞두고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던 김동만 이사장은 한상균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손을 잡았다. 당시 한 위원장은 “단금지교(쇠붙이도 끊을 수 있는 단단한 교분)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오늘은 그런 자리”라고 말했고, 이에 김 이사장은 “유력동천(노력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의 자세로 난국 타개를 위해 손잡고 나가자”고 응수했다. 두 위원장은 지금까지도 끈끈한 연대 관계를 맺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동만 이사장이 노동자 관련 기념사업회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도움을 준 인사로 꼽힌다. 전태일 열사와 관련해서도, 서울 종로구에 기념관을 개관하는 데 박 시장이 힘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남산에 위치한 ‘기억의 터’에 강제징용 노동자 상을 세우는 데도 박 시장과 대체적으로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있었다. 2016년에는 성과연봉제 반대에 앞장서는 등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