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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코로나 대응’

에어비앤비 등 테크기업 직원 대량 해고, 스타트업 경영난 심화 속 아마존 등선 ‘비대면’ 활용 매출 급증

원천기술 보유 구글·애플 등도 투자전환·사업다각화… 주민·소상공인 지원하며 부정적 이미지 쇄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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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해고됐어요. 해고는 예고 없이 하는 거잖아요. 아직은 덤덤합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베이 지역의 자택격리(Shelter in Place)가 벌써 두 달째 이어진 상황에서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다니던 A(47) 씨는 안부 대신 자신의 해고 소식을 전해줬다. A 씨가 평소 그 기업에서 인재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해고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미국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는 3∼4월 두 달은 버텼지만 5월 들어 속속 해고 소식이 들린다. 5일(현지시간)엔 공유숙박의 아이콘이자 호텔 하나 없이 세계 최대 숙박 체인이 된 에어비앤비가 전 직원의 25%에 해당하는 19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는 직원의 25%가 직장을 잃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당장 새로운 자금 조달을 시작해야 할 스타트업은 미국에서만 약 7200개에 이르는데 현재의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사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신사업 및 신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틈새를 찾아가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대박을 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빅테크 5’ 기업의 원천기술은 필수설비처럼 돼 가고, 과감한 투자 방향 전환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도 늘어간다. 실리콘밸리 내에서는 차츰 이번 팬데믹이 경제·산업의 근본 즉 펀더멘털까지 해치는 나쁜 위기가 아니라 사업 전환의 기회로 삼는 ‘좋은 위기(good crisis)’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신사업 및 신시장에 공격적 진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신사업 진출을 과감히 해냈다. 특히 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화상회의 솔루션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새로 내놓거나 무료로 풀었는데 이것이 대박을 쳤다. 이 가운데 줌(Zoom)과 10∼20대 중심으로 이용자가 급증한 하우스파티(House party)는 지난해 12월 이용자가 각각 2000만 명과 1000만 명이었는데 지난 3월은 이용자가 각 3억 명과 2억 명으로 급증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재택수업이 기본이 되자 화상회의를 회의 때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소셜 미팅을 할 때도, 혹은 학교 수업을 할 때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줌 미팅할 때 바꾸는 배경화면과 하우스파티의 증강현실(AR) 스티커 기능이 화상회의를 소셜 도구로 만들었다.

경쟁은 경쟁력을 만든다. 이들 기업의 급부상에 다급해진 페이스북은 50명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룸스(Rooms)’를, 구글은 유료 G스위트 이용자만 사용하던 화상회의 솔루션 ‘미트(Meet)’를 60분, 100명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낮엔 줌, 밤엔 하우스파티’라는 뉴 트렌드 따라잡기 차원이었다. 미 통신사 버라이즌은 화상회의 솔루션 ‘블루진스(BlueJeans)’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화상회의가 5세대(G) 시대의 ‘킬러 서비스’가 될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은 인도 통신사 지오 플랫폼스(Jio Platforms)에 출자해 인도 시장 진출을 이뤄냈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산하 지오플랫폼스의 지분 9.99%를 57억 달러(약 7조400억 원)에 인수한 것. 이로써 인도 통신과 결제 시장에서 페이스북은 자사의 다양한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게 됐다.

◇필수설비가 된 원천기술

구글(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소위 ‘빅테크 5’ 기업은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경쟁에서 크게 앞서갈 기회로 만들고 있다. 이들의 기업가치도 급상승해 ‘빅테크5’ 기업은 현재 미 S&P500 주식시장 지수 가치의 20%(5분의 1)를 차지한다. 이는 팬데믹 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마존 쇼핑, 구글 검색, 유튜브 동영상, 페이스북 서비스(인스타그램, 왓츠앱), 애플의 기기가 정보기술(IT)에 필요한 단순 기기나 서비스가 아니라 마치 전기나 수도와 같은 필수설비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페이스북은 패밀리 앱(페북,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의 월 사용자 수가 29억9000만 명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코로나바이러스 정보의 도서관 역할을 했다. 감염병 확산에 따른 바이러스 관련 정보 검색이 많아지면서 검색엔진, 유튜브 및 기타 앱 서비스의 사용량이 증가했고,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검색 활동의 최고치가 슈퍼볼의 최고치보다 4배나 더 많았다. 소비자들이 화장지와 세정제를 아마존에서 구매하는 바람에 올 들어 아마존 매출은 754억5000만 달러(약 91조5918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6%나 상승했다.

◇사업 다각화 가속도

이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의 ‘사업 다각화’ 전략도 위기 때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다. MS는 기업의 광고 집행이 줄어들어 링크드인 광고와 검색 매출에 악영향을 받았지만,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Azure)의 매출은 전년 대비 21%나 상승한 123억 달러(14조9937억 원)를 기록, 신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애플은 그동안 전략적으로 추구해 온 ‘탈 아이폰’ 전략이 통했다. 아이폰 매출은 줄었지만 에어팟,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은 연 220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 만들었으며 서비스 매출액도 133억 달러였고 전체 매출에서 서비스 매출 비중을 22.9%로 키웠다.

거대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을 그간 공룡 취급을 받아 반독점 소송에 몰렸던 부정적 이미지 쇄신의 기회로 삼고 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팀 쿡 애플 CEO 등 기업인들이 팬데믹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과 소상공인 등에게 현금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단순한 위기가 아닌 ‘좋은 위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투자 방향의 전환

벤처캐피털도 투자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안데르센은 최근 “이제는 다시 일으켜 세울 때다(It’s time to build)”라고 선언하며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 및 인프라에도 투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마크 안데르센은 지난 2011년 오늘날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혁명을 예고한 “SW가 세상을 집어삼킨다”는 말로 유명해졌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의 꿈을 재건해야 한다. 미국은 새로운 제품, 산업, 공장, 과학을 만드는 데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정치적 지원이 필요하다. 공공 부문에서 더 나은 병원,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통수단, 도시, 주택을 지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팬데믹 상황에서 재등장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이제 소프트웨어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실물(오프라인)이 결합한, 눈에 보이는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밸리는 나아가 미국 내 제조업을 재건하고 하드웨어 및 테크 인프라를 통해 공공 부문을 혁신하는 것에 대한 투자 방안도 찾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 더밀크 대표 jaekwon@themiilk.com


■ 세줄 요약

해고 바람 부는 실리콘밸리: 코로나 팬데믹,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도 덮쳐. 공유숙박 아이콘 에어비앤비와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가 25% 해고 통보. 미국 내 새 자금 조달 스타트업이 약 7200개나 되는 등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사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들 : 신사업 및 신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틈새를 찾아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면서 대박을 치는 기업이 나오고 있음 . 팬데믹이 나쁜 위기가 아니라 ‘좋은 위기(good crisis)’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옴.

벤처캐피털 투자 방향의 전환 : 실리콘밸리는 소프트웨어 투자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실물의 결합을 추구하며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중. 실리콘밸리는 제조업을 재건하고 하드웨어 및 테크 인프라를 통해 공공 부문을 혁신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임.


■ 용어 설명

‘빅테크 5’란 기술의 진화를 통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간생활의 ‘빅 웨이브’를 일으키는 거대 기업들. 주로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내 5대 대형 기술 기업을 말함.

‘좋은 위기(good crisis)’란 실패로 귀결되는 위기가 아닌, 한 번 더 기회가 되는 위기를 말함.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내 빅테크 기업이 기술 진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