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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2주년 성명에서 “남북협력 여건이 좋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면서 코로나19 방역 협력, 남북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이산가족 상봉 및 실향민 상호 방문 등 4대 협력사업을 제안했다. 정부는 그 첫 걸음으로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간 110㎞ 복구를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지난달 27일 제진역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을 뿐 아니라,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김정은 유고 가능성을 처음 보도한 것은 미국 CNN이다. CNN은 김정은이 모종의 수술을 받은 후 ‘위중한 상태’여서 미국 정보 당국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김정은이 평양을 비운 사이 주민들이 쌀과 담배 등을 사재기하고 있으며, 그의 행방을 둘러싼 여러 추측이 난무하면서 평양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그의 신변에 이상이 없으며 북한 내 특이동향은 없다고 확인했다.

이처럼,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은 한반도는 코로나19 여파 속에 총선을 치렀고, 북한 내부의 심상찮은 동향, 그리고 진전없는 비핵화 협상은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로 열린 한 전문가 대담에서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참석해 북한에 대한 통 큰 협력을 제안했다. 북한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점 추진하는 평양종합병원에 들어갈 의료기기 전부를 우리가 다 지원해 주자는 것이다.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특사 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 적극적인 대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구상이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의 호응과 국제사회와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북한도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상태다.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당분간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올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남북경협에 앞서 미국과 북한 비핵화 협상 공조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은 남북대화와 미·북 협상 모두 올스톱 상태로,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부과한 각종 제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 먼저 북한에 뭔가를 주면 북한도 선의의 변화로 호응하리라는 ‘희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대북 제재 선(先) 해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진행 중이라 했지만, 미 국무부는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남북 간 협력이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lockstep)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독자적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백악관이 아직 명확하게 밝힌 건 아니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을 위해서는 남북경협이나 철도 연결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와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 국민경제를 되살리는 게 급선무다. 한반도 문제는 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 미·북, 국제사회·북 세 차원의 조율과 진도가 맞아야 북핵(北核)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문 정부가 남·북 차원에만 매달려 조급증을 내는 것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