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하안송 기자

- (14) 일상 속 젠더 갈등

규정·관습 등 사소한 일상까지 들끓는 ‘남녀 불공정’ 논란…‘젠더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

남성들 “女주차구역 너무 많아”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폐지 의견
대학내 남성휴게실 부재도 불만
2030男 “정책·문화 차별 심해”

여성들은 ‘핑크택스’ 불만 부글
같은 쇼트커트인데 女가 더 비싸
남녀가격 동일 책정한 미용실도
뉴욕선 핑크택스 철폐 법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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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별 기준으로 남녀에게 차별적 혜택을 제공하는 규정·관습 등에 대해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 상황에서, 성별을 유일한 기준으로 혜택을 제공하면 일상 속 사소한 문제가 심각한 젠더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우선주차구역 주차장 설치 불공정 의견 많아 =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이마트 지하 4층 주차장. 마포구에 사는 김모(39) 씨는 주차장을 한 바퀴 돈 뒤, 비어 있는 여성우선주차구역을 두고 출입구에서 먼 일반 구역에 주차했다. 그는 “여성 ‘전용’ 구역이 아닌 이상, 남성도 여성우선구역에 주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눈치가 보이고, 비어 있는 일반 주차구역도 있어 오늘은 여성우선구역에 주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40대 김창범 씨는 “남성 우선 주차장은 없지 않냐”며 “여성우선구역이 지나치게 많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여성우선구역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남성 혼자 와서도 이곳에 주차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실제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여성우선구역에 주차한 25대 중 5대(20%)에서 남성 혼자 차에서 내렸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이마트의 여성우선주차구역 모습. 같은 날 한 남학생은 학교 로비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조윤진·장은현 인턴기자

다음 날 찾은 서울 동대문구 홈플러스 4층 주차장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아이와 함께 마트를 찾아 여성우선주차장을 이용한 이진영(여·44) 씨는 “여성우선구역을 만드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도봉구에 사는 맹모(36) 씨는 “남성도 여성우선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눈치가 보이고 괜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도 다르지 않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2030세대 젠더 및 사회의식 조사’(2018년) 논문을 보면, 19∼39세 남성들은 여성우선주차장 등의 이유로 여성보다 6배로 더 정책적·문화적 차별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의견에 따라 여성우선주차장을 교통약자주차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전용(우선)주차칸을 폐지하고 교통약자주차칸으로 바꿔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4521명이 서명했다. 다만, 반대 의견도 없지 않다. 홈플러스에서 만난 50대 허모 씨는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에게 조금이라도 편의를 제공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일반 칸이 비어 있는데, 굳이 여성우선 칸에 주차하는 남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등록금 내는데 남성 휴게실은 왜 없냐”= 대학생들은 대학 내 휴게실 설치 방식에 대해 불공정성을 제기하고 있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인 이모(27) 씨는 쉴 때 주로 도서관이나 지하 광장에 마련된 소파를 이용한다. 지난 2017년 고려대 자연계 캠퍼스에 하나 있던 남학생휴게실이 리모델링 공사로 사라지면서 여학생휴게실 세 곳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남학생휴게실은 없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학년이 약 200명인데, 그중에 여자는 8명이다”며 “공대에서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자휴게실이 있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전자공학부가 있는 고려대 공과대학 재적생의 남녀 성비는 약 8대 2다. 고려대는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자 자연계 캠퍼스 과학도서관 지하 1층에 남녀 휴게실을 각 1개씩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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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종로구 인문과학캠퍼스 내 여학생휴게실은 3곳이 있지만, 남학생휴게실은 1곳뿐이다. 이 휴게실도 남학생 휴게실이 없어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아 2017년에 신설한 것이다. 소비자학과에 재학 중인 정택규(26) 씨는 “똑같이 등록금을 내는데 여학생휴게실이 더 많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성비를 고려해 휴게실 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뿌리 깊은 ‘핑크택스’ 불공정 =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핑크택스’(Pink Tax·동일한 상품, 서비스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현상)를 책정하는 경우도 있다. 서대문구 신촌역 근처 한 미용실 가격표에는 남자 커트 1만3000원, 여자 커트 1만5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근처의 또 다른 미용실도 남자 커트 1만2000원, 여자 커트 1만5000원을 받고 있었다. 두 곳에 아주 짧은 ‘쇼트커트’인데도 여성 커트 가격 그대로를 내야 하는지 묻자, 직원은 “쇼트커트여도 가격은 같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미용실도 마찬가지였다. 종로3가역의 한 대형 미용실은 남성 커트 2만 원, 여성 커트 2만2500원을 받고 있었다. 이곳 직원은 “여자 쇼트커트와 남자 커트는 차이가 있어, 기장이 짧아도 남자 가격을 적용받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태릉입구역의 또 다른 대형 미용실도 “이 가격 정책은 ‘기본 매뉴얼’이다”며 “쇼트커트라도 할인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격 책정은 이들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회가 지난 2018년에 진행한 ‘헤어 미용 서비스 업계의 정보제공 및 가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511개 업체의 남성 커트의 평균 가격은 1만5454원, 여성 커트의 평균 가격은 1만7211원으로 나타났다.

공정성 논란이 일자 남녀 가격을 똑같이 하는 미용실도 있다. 신촌역 인근의 한 대형 미용실은 커트 가격을 남녀 동일하게 2만5000원으로 책정했다. 이곳 직원은 “저희는 남녀 커트 중 한쪽에 기술적으로 더 노동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성분이 같은 화장품에서 여성 제품이 남성용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한 대형 화장품 회사는 달팽이 점액 여과물이 주성분인 에멀션 가격을 남성용 2만2000원, 여성용 2만5000원으로 책정했다. 여성용이 3000원 더 비쌌지만, 오히려 남성 제품의 용량이 145㎖로 여성용의 용량 120㎖보다 25㎖ 더 많았다. 또 남성용 제품에 향을 내는 3가지 성분이 추가로 더 들어가 있을 뿐, 그 외 성분도 동일했다.

핑크택스가 사라지지 않자, 해외에서는 핑크택스 철폐를 법안으로 만들기도 했다. 최근 미국 뉴욕주 상·하원에서는 핑크택스 금지 법안이 포함된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을 발의한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SNS상에 ‘#PinkTax’ 해시태그 캠페인을 열어, 이러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손기은 기자, 조윤진·장은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