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직원들 살인적 업무량 떠안아
“현금출납기” 비아냥에 사기 뚝

‘울고 싶어라.’

8일 세종 관가(官街)에 따르면, 요즘 우리나라의 재정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의 분위기가 침통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싸움 직전까지 가는 격론 끝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1400만 가구)로 결정한 지 10일도 안 돼 정치권에서 대상자를 전체 국민(가계)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야당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고 있고, 청와대도 4·15 총선을 의식해 전 국민 지급 가능성을 열어뒀다.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지원금을 줄 경우에 필요한 재원 9조1000억 원 중에서 7조1000억 원(2조 원은 지방자치단체 부담)을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편성하기 위해 세출 구조조정에 한창인 예산실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상태다. 지급 대상과 기준이 바뀌면, 재원 규모도 달라지고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해야 한다.

예산실은 정치권 주장과 상관없이 일단 7조1000억 원을 2차 추경 규모로 정하고 세출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시급성이 생명인 긴급재난지원금의 특성상 최대한 빨리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2차 추경 규모를 증액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국회에서 증액하든, 감액하든 정치권에는 예산을 편성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으므로 어차피 실무 작업은 모두 예산실 직원들이 해야 한다.

예산실은 올해 들어 이미 11조7000억 원 규모의 1차 추경 편성을 마쳤다. 현재 예산실은 내년 예산 편성 작업을 진행하면서 2차 추경 편성을 동시에 하고 있다. 2차 추경으로 상황이 종료될 것 같지도 않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산업(기업)을 지원하는 일과 세수 부족분 보전을 위한 세액경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3차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예산실 직원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 살인적인 업무량만은 아니다. 옛 경제기획원(EPB) 시절부터 지켜온 ‘재정 당국의 자존심’이 뿌리째 뽑힌 것이 더 크다. 요즘 세간에서 예산실을 두고 ‘현금출납기(ATM)’라고 비아냥거리듯 부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종 관가에서는 “총선 앞이라고는 하지만, 여·야 정당이 해도 너무 한다”며 “1차 추경 편성을 마치고, 내년 예산 편성이 시작된 상태에서 2차·3차 추경까지 편성해야 하는 예산실의 처지가 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