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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음악의 온전함을 쉽게 느껴 보려면, 베토벤의 전 작품을 한 편의 연속된 음악이자 삶의 기록으로 보면 된다.(…) 베토벤도 바버라도, 만약 선택할 수 있었다면 자신들이 간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들 앞에서 그 길을 당당히 걸었고, 때로 비틀거렸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주어진 재능과 목표한 소명을 등불 삼아 나아갔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남들을 이끌되 떠밀지 않는 등불이 될 수 있었다. 비극성과 승리감이 넘치는 익숙한 악구들로 대표되는 베토벤의 격정적 음악은 그가 밝힌 등불의 일부이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온전할 수 없다.”(324쪽)

올해는 악성(樂聖)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평생 연구해온 미국의 음악학자인 로빈 월리스가 쓴 ‘소리 잃은 음악:베토벤과 바버라 이야기’(홍한결 옮김／마티)는 청력을 잃은 음악가 베토벤에 관해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악성, 반신반인, 괴팍한 천재와 같은 박제된 이미지나 영웅 신화를 벗어나 귀먹은 베토벤의 창작 행위와 행적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한다.

베토벤의 아내 바버라는 20대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아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44세에 청력을 잃었다. 베토벤보다 10년 앞서 귀가 먹은 것이다.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아내를 10여 년간 곁에서 지켜보면서 희미한 청각, 촉각 기억, 시각을 모두 동원하는 음악 지각 능력 등을 배우게 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청력 상실 후 베토벤이 작곡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베토벤의 후기 작곡 활동을 낭만화하거나 신화화해 바라보지 않는다.

저자는 “베토벤의 생애는 결연하고 부단한 적응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베토벤의 음악적 위대함은 청각 장애를 극복한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귀가 먹으면서 기존의 방법들을 조금씩 개선해 간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408쪽. 2만 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