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기 수원시 장안구 행궁동 한정식집 ‘화성옥’에서 한 직원이 오찬을 예약한 손님을 맞기 위해 상을 차리고 있다.

업종 가리지 않고 곳곳서 냉가슴

단체손님 식사 예약 받으면
음식재료·종업원 추가고용 등
준비 비용만 수만~수십만원
갑자기 취소되면 피해 떠안아

공정위, 예약금 규정 마련에도
악평 쏟아질라 요구 어려워

“손님 입장에서는 예약을 무시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가 어렵지 않겠지만, 우리는 예약한 손님이 오지 않으면 음식 재료에 인건비까지 그대로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노쇼(No Show·예약부도)’는 정말 사절입니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행궁동에 있는 한정식집 ‘화성옥’의 조이화(여·49) 대표는 31일 문화일보와 만나 “식사 모임 예약이 잦은 이달을 조마조마하게 넘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40인분의 식사 예약 주문을 받고 종업원 2명을 추가 고용해 음식을 준비했다가 손님이 식사시간 직전에 예약을 취소해 낭패를 봤다. 아침 일찍부터 장만해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은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반나절 동안 일손을 도울 직원을 고용하는 데 1명당 5만 원이 들었는데, 예약 취소 탓에 10만 원의 인건비를 그냥 날렸다. 화성옥은 이렇게 한 달에 3번 이상 ‘노쇼’ 피해를 보고 있는데, 정확히 계산하면 매월 수백만 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고 조 대표는 분통을 터뜨렸다.

조 대표는 “어머니께서 22년 전 처음 식당 문을 여신 이후 김치 한 조각조차 다른 가게에서 사다 내놓은 적이 없다”며 “요리는 물론 밑반찬까지 주방에서 일일이 조리해서 나가는데, 예약 손님이 갑자기 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 아까운 음식들이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규모로 연회가 가능한 음식점들 사이에서 ‘노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충남 천안시 한 중심가에서 수제 맥주 가게를 운영하는 K(50) 씨도 피해자다. 그는 최근 단체 손님 15명을 예약받았다가 낭패를 봤다. 당시 예약자는 연말 모임이 많은 금요일 저녁에 부서 회식을 하겠다며 자리를 잡아놓고는 약속 시간에서 30여 분이 지난 뒤에야 예약을 취소한다는 일방 통보를 해왔다. 수제 맥주는 상온에서 보관이 어려워 제때 소비하지 못하면 전량 폐기해야 해 K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손님이 붐비는 이른바 피크타임에 40석 규모의 매장 절반을 예약석으로 비워놨다가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평소 주말에 고객 1인당 평균 매출액이 3만 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40만∼45만 원 수준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K 씨는 “단골손님이라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이날 평소보다 많은 식자재와 수제 맥주를 준비하는 바람에 손해가 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강남구의 M레스토랑은 최근 노쇼 손님이 늘어 아예 예약금 기준을 바꿨다. 기존에는 예약자가 4인 이상일 경우에만 점심 10만 원, 저녁 20만 원의 예약금을 받던 것을 이달부터는 손님 1명만 오더라도 점심은 2만5000원, 저녁은 5만 원의 예약금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4명 이상이 올 경우에만 예약금을 받았지만, 1∼3명 인원을 예약하고서는 오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아 부득이하게 인원당 예약금을 받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노쇼 피해는 요식업에서만 발생하고 있지 않았다. 녹색소비자연대가 2016년 음식점과 미용실, 병원, 대리운전 등 39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예약 불이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사업장의 모든 예약 중 노쇼 비율은 7.6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5년 외식, 의료, 미용, 공연, 고속버스 등 5대 서비스업종을 대상으로 조사대상 업체의 연간매출액과 예약부도율을 활용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쇼가 8조2780억 원에 이르는 생산 손실과 3조3110억 원의 부가가치 손실, 10만8170명의 고용 손실을 초래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해 2월 노쇼 고객에게는 예약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위약금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손님에게 예약금을 요구하면 상호 간 믿음이 깨져 장사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대책이 실효성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충남의 한 네일숍 원장은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먼저 받은 예약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으며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환불을 요구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상습적으로 예약을 어기는 손님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식으로 자구책에 나서고 있다. ‘노쇼노노’ ‘블랙노쇼’ ‘고레스토랑’ 등 단순 변심 등을 이유로 상습적으로 예약을 취소하는 고객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속속 출시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결국 소비자 의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자영업자들은 소문만 잘못 나도 장사를 망치기 때문에 사실상 위약금 부과 제도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제도 개선이나 새로운 시책 도입 등도 중요하지만 우선 고객이 서비스 업체와의 약속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원 = 글·사진 박성훈 기자, 지건태 기자 psh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