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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국회가 지난 27일 헌법과 국회법을 무시한 채 변칙을 반복하며 위헌적인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선거법 개정의 과정부터 위법투성이이다. 그 책임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있다. 당적도 버리고 중립적인 국회 운영을 해야 할 의장이 헌법과 국회법을 어기면서 편파적인 의안 처리로 일관했다.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의원을 강제로 바꾸는 위법적인 사보임 승인 과정부터, 선거법 기습 상정에 이르기까지 독단과 편파적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 운영의 중심 기구는 교섭단체와 상임위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협상 대상인 두 야당 교섭단체를 배제한 채 비교섭단체인 군소 정당과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법적 근거도 없는 위법 기구를 만들어 선거법을 처리했다. 더욱이, 상정된 의안에 대한 수정안은 원안의 취지 및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정한 국회법을 어기고 원안과는 별개의 난수표 선거법을 만들었다. 이 선거법은 그 절차적인 위법성 때문에도 위헌이고 위법하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일 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만드는 자체가 독재적 발상이다.

선거법은 그 내용도 위헌이다. 헌법이 정한 선거제도의 기본원칙인 직접·평등선거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일찍부터 이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하는 결정을 해 왔다. 주권자인 국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국민은 자신의 투표권이 어떤 계산법에 의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알고 투표해야 한다. 그것이 직접선거의 원칙이다. 지역구 후보자 투표 때나 정당명부 투표 때나 국민은 분명히 자기가 투표하는 후보자가 당선하고 그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얻을 것을 기대하고 투표하게 된다.

그런데 개정 선거법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의석 배분 방식에 대해 난수표 같은 특례 조항을 만들었다. 그 결과 정당에 투표하는 국민은 자신의 투표가 어떻게 평가될지도 모른 채 깜깜이 투표를 해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을 뽑기 위해 헌재의 결정으로 도입한 정당투표 제도가 완전히 실효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개정 선거법은 평등선거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모든 주권자의 투표는 그 산술적인 셈 가치뿐 아니라 성과가치도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비례대표의원 의석배분 방식에 관한 특례조항 때문에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역구에서 많은 당선자를 내고 정당투표에서도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은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돼 있다. 국민이 행사한 투표의 성과가치의 평등을 무시하는 특례조항 때문이다.

이처럼 위헌적인 선거법으로 구성되는 국회가 과연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국민은 이런 괴물 선거법을 만드는 데 동조한 인물과 정당을 분명히 기억했다가 투표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헌정사에 이런 위헌적이고 후진적인 국회 운영과 야합 정치가 사라진다. 한 국가의 대의민주주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민주주의 수준에 비례한다는 명제를 잊지 말고 주권자의 힘을 분명히 보여 줄 때가 됐다.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도 이 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송이 접수된다면 지체 없이 위헌적인 특례조항(부칙 제4조)의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으로 우리 헌법이 정한 선거법의 기본원칙과 대의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헌법재판소의 설립과 존립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