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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前 교육부 차관

우리나라의 교육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했다.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이후 국가 발전을 이끈 원동력은 교육이었고,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로 작동하면서 사회를 유지 발전시킨 바탕도 교육이었다. 한마디로 교육은 우리나라 근대화·산업화·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교육은 우리 사회·경제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여러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최근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지고 있고, 급기야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경고음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 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들의 경쟁력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대학평가기관 QS의 자문위원장 마틴 잉스는 “한국 대학의 순위 하락이 근본적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가적으로 우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초중등교육에서도 ‘2018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읽기 성적이 떨어졌고, 수학·과학 등은 경쟁국에 뒤졌다.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이 계층사다리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응답자가 2009년 48%에서 2019년 29%로 크게 떨어졌다.

무슨 이유에서 우리의 교육 경쟁력이 떨어지고 희망의 계층사다리 기능도 약해졌는가? 교육 경쟁력 하락의 주범(主犯)은 교육의 정치화와 교육에 대한 과도한 규제이다. 교육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교육청 수준에서, 학교와 교실에서 정치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교육의 정치화는 매우 부적절하다. 헌법에 규정돼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감이 정당에 소속돼선 안 됨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공교육이 특정 정치 집단에 이득을 주거나 특정 정치 이념의 전달처가 돼선 안 됨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로 인한 정권의 지지도 하락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를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입 제도 개선 방향 발표는 정책 개선이 아닌 정치적인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입 제도에서 정시 비율을 특정 수치로 못 박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선거로 선출된 시·도교육감들은 종종 정치적인 행위로 보이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듯하다. 서울 인헌고 사태는 학교와 교실에서도 교육의 정치적 독립성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시교육청이 정치 편향성을 가지고 후속 조치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케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교육에 가해지는 불필요한 규제들이 과감하게 철폐돼야 한다. 초중등교육에서, 창의·융합 인재가 키워질 수 있도록 교실이 변해야 하며, 교육이 계층사다리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내년 교육예산에 계층사다리 관련 다수 시범적 사업의 예산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이다.

대학입시와 관련, 정부는 입시 요소들이 공정하게 기록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입시 요소의 오남용이나 일탈이 나타난 경우 일벌백계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구체적 대입 방식의 선택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대학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정책들은 폐지하고, 특히 대학 경쟁력 제고의 걸림돌이 되는 반값등록금 제도는 이제는 개선해야 한다. 등록금 인상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국가장학금을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