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한·일(韓日) 외교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경제인들이 협력 강화를 다짐하고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다.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14∼15일 도쿄에서 제28회 한·일 재계회의를 열고 “어떠한 정치·외교 관계 하에서도 경제·산업 협력 관계를 한층 확대·심화시킨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이 밝힌 대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과 일본은 정치·외교·경제·문화 등에서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해 상호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웃 나라 간의 상호 보완적 분업 구조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계속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각의 자회사인 라인(LINE)과 야후재팬을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5일 확인됐는데, 이 역시 바람직한 기류다. 실무 협의가 완료되진 않았지만,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자금을 출자해 신규 법인을 세우고 공동 경영하겠다는 구상임을 양측이 공표했다. 통합이 실현되면 미국과 중국이 양분한 글로벌 IT 패권에 대항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열렸던 여야 5당 대표 만찬 회동에서 “일본의 경제 침탈과 지소미아 문제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관리 강화를 ‘경제 침탈’로 규정한 것 같은데, 일본이 한반도를 수탈하던 일제시대 얘기를 하는지 착각이 들게끔 한다. 한·일 경제를 바라보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인식이 ‘죽창가’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적(敵)과의 동침’도 마다 않는 민간 경제계와의 인식 격차가 절벽처럼 아득하다. 생존과 발전을 위한 합종연횡이 국경을 넘나들며 가속화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경제 침탈 운운하는 시대착오적 경제 인식을 접하면서 걱정이 앞선다. 이제라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