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자하리스는 육상선수에서 프로골퍼로 전향한 뒤 LPGA투어에서 메이저 10승을 포함, 통산 47승을 거뒀다.

올림픽육상 금메달리스트 출신
1934년 골퍼 전향후 10년 도전
예선서 男선수 200여명과 경쟁
이틀간 157타로 3라운드 통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인 194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리비에라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로스엔젤레스오픈. 1926년부터 열린 남자대회였지만 1945년 여자골퍼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스. 남자대회에 정식으로 출전한 최초의 여 프로골퍼다.

그는 1936년부터 계속 남자대회에 출전해 골프 최초의 ‘성 대결’을 벌여왔다. 컷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대회 출전을 위해 그는 하루 전 열린 예선에서 200여 명의 남자 선수들과 경쟁, 40여 명에게 주어지는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자하리스가 1932년 LA올림픽 육상선수로 참가하던 모습. 자하리스는 창던지기에서 43.68m를 던져 금메달을, 80m 허들 경기에서는 11초 7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본 대회 첫 라운드에서 자하리스는 남자 프로들과 같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7000야드 가까운 코스로 큰 부담감을 안고 경기를 치렀다. 자하리스는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270야드를 날리는 장타자였다. 1911년 노르웨이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고향 텍사스에서 학창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홈런을 날려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애칭 ‘베이브’로 불렸다.

자하리스는 대회 첫날 76타, 둘째 날 81타를 쳐 합계 157타로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 3라운드에 진출했다. 팬과 언론은 그를 쫓아다녔다. 그는 사흘째 힘에 부쳤는지 79타를 치면서 마지막 4라운드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째 ‘성 대결’을 고집한 끝에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운동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그는 1932년 LA올림픽 육상 창던지기와 80m 허들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해 주변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고, 불과 2년 만인 1934년 골프선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처음 출전했던 텍사스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손에 감은 붕대가 피로 얼룩질 만큼 맹훈련을 소화했다. 하루 14시간씩 클럽을 휘두른 연습벌레였다. 그가 남성대회에 출전한 건 성 대결을 원해서가 아니라 여자 프로골퍼들이 활약할 무대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여자프로골프연맹(WPGA)이 존재했지만, 활동은 거의 없었다. 자하리스는 여성 아마추어와 각종 프로대회, 10회의 메이저대회 등 모든 여성 대회를 섭렵했다. 그의 가장 돋보이는 기록은 전무후무한 공식대회 17연승이었다. 당시 여성 골퍼로서는 이례적으로 윌슨사와 10만 달러의 광고 계약을 최초로 맺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여자대회 출전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던 자하리스는 동료 여성 선수 13명을 불러모았다. 루이스 서그, 패디 버그, 미키 라이트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라성 같은 선수 13명이 1950년 플로리다의 베네치안 호텔에 모였다. 이들과 함께 여자프로골프협회(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를 발족시켰다. 미국에서 골프가 시작된 1888년 이래 62년 만에 공식적으로 돈과 명예를 쌓을 수 있는 여성 골퍼들의 발판이 마련됐다. 하지만 자하리스는 1956년 암 투병 끝에 4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