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멍 난 돼지열병 차단 대책

이동경로 정확한 데이터 없고
수렵가능 인력조차 파악 못해
포획조치 실효성 회의적 반응
농가“애꿎은 축사돼지만 살처분”

강원 철원지역의 멧돼지 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발견됨에 따라 동북부 지역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철책을 벗어난 곳에서 발견됐기에 통제가 어려운 야생 멧돼지에 의한 전파 가능성은 더욱 커진 셈이다. 환경부는 접경지 멧돼지 집중 포획을 허용했지만, 뒤늦은 조치와 실행 인력마저 확보하지 않은 채 시행에 들어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파 핵심 매개체에 대한 조치를 미뤄둔 채 애꿎은 축사 돼지들만 예방적 살처분을 한 방역 당국에 대한 양돈 농가들의 반발도 거세다.

환경부는 14일부터 경기 남양주·가평·의정부, 강원 춘천·인제·고성을 경계지역으로 설정하고 야생 멧돼지 전면 제거를 목표로 집중 포획을 실시하기로 했다. 군 저격수와 민간 엽사를 팀으로 집중사냥지역에 투입해 수렵활동에도 나선다. 멧돼지 한 마리당 10만∼20만 원의 포획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민간인통제선 지역 민간인 출입도 제한키로 했다. 경기도는 현재 ASF 발생위험 지역인 경기 북부 7개 시·군에서 총기를 사용한 멧돼지 포획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일정 기간 총기를 사용해 멧돼지를 포획하는 방안을 31개 시·군으로 확대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하지만 이런 집중 포획이 가능할지는 합동 방역 당국 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야생 멧돼지가 서식하고 이동하는 데 대한 정확한 데이터도 없는 데다, 뒤늦게 수렵 인력을 모집해 포획에 나서는 게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쪽 임진강 수계를 통한 ASF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이 제기될 당시, 전문가들은 야생 멧돼지에 대한 전파 우려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해 왔다. 방역 당국도 멧돼지 개체 수 조절 등에 대해 언급했으나, 소관 부처인 환경부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감염 멧돼지가 민통선 내에서 발견되자 뒤늦게 수렵을 허용하며 허둥대는 모습이다. 환경부는 포획단을 구성하고 군 인력까지 투입해 수렵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멧돼지의 서식지·이동 경로와 같은 기초적인 정보와 확보된(혹은 확보할 수 있는) 수렵 인력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대책 시행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ASF가 국내에 발병한 지 4주가 지나서야 이 같은 조치에 나선 방역 당국에 대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강한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방역 전문가는 “서식지·이동 경로, 개체 수 등 기초적 데이터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방역 당국이 늑장 대응을 하며 확산 우려를 키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역 당국의 늑장 조치에 대해 양돈업자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태식 대한한돈협회 회장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경기도 연천 돼지 일괄 살처분에 반대하며 멧돼지 관리부터 하라”며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박정민·김성훈 기자, 연천 = 오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