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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지난 6일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 언급은 대북 대화 압박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안보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비건 대표는 미·북 비핵화 협상이 실패할 경우를 가정해 한·일의 핵무장론이 대두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북한에 대해 “핵무기가 아니라 비핵화가 (체제) 안전을 제공한다”고 압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엔 관심이 없고, 각종 미사일 발사를 통해 대미 메시지를 전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평화 공세를 펼친 이후 한 해 동안 미사일을 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5월 4일 발사를 재개한 이후에는 한꺼번에 밀린 숙제 해치우듯 9일까지 9차례나 미사일 또는 미사일급 방사포를 쏘아댔다. 이를 통해 북한은 네 가지의 신종 공격무기를 과시했다. 그중에는 러시아가 유럽에 구축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돌파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빼닮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도 있었고, 한국의 대다수를 타격권에 넣는 초대형 방사포도 있었다. 당연히, 신무기들을 만드는 목적은 ‘한국군 미사일 방어(KAMD) 체계의 무력화’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물렁한’ 정부가 들어선 것을 이용해 서해 함박도에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현상 변경’도 강행했다. 그런데도 평온하기만 한 정부와 군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많은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고 핵탄두를 탑재할 각종 투발 수단들을 차고 넘치도록 개발했으며, 북한의 공격 능력과 신무기 개발 속도가 국군의 방어 능력을 크게 추월했고, 이번에 선보인 신무기들에 더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과 순항미사일(SLCM)을 배치하면 KAMD가 빈껍데기가 된다는 사실 등이 분명해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올리브 가지를 흔들면서 정상외교를 펼친 2018년에도 뒤로는 F-35 스텔스 전투기가 배치될 청주기지를 비롯한 한국 내 전략목표들을 파괴할 공격 수단들을 북한은 쉼 없이 개발해 왔다.

국군은 이제부터라도 ‘선제-방어-응징’을 통한 북핵 억제 체계인 3축 체제를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를 전면 재검토·강화해야 한다. 특히, ‘억제의 요체’인 응징보복력을 증강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와 동시에 국군은 ‘선제(kill-chain)와 방어(KAMD)’를 통한 억제체제를 구축했다가 2016년에 ‘응징보복(KMPR)’을 추가해 ‘3축’ 개념을 확립했는데, 뒤늦었지만 이는 올바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축 체제 구축은 상당 부분 동력을 상실했고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응징보복’이라는 용어도 사라진 상태다. 군이 구멍 난 미사일 방어 체계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오지랖’ ‘삶은 소대가리’ ‘푼수 없는 짓’ 등 북한이 쏟아내는 언어 폭력에 경고하는 것도 아니다. 국방장관은 “함박도는 원래 북한 땅”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고, 지금도 성주에는 데모꾼들이 사드(THAAD) 기지의 정상 가동을 막고 있다.

이대론 안 된다. 북한의 엄중한 현상 변경을 못 본 체하고 도발에 침묵하는 게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만들고, 응징보복이 두려워 대남 도발은 감히 꿈도 꾸지 못 하도록 만드는 게 ‘당당한 평화’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