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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국제부장

日 겨냥한 지소미아 파기 결정
한·미 不信 키우고 日 돕는 역설
美서 먼저 나온 核공유론 주목

北 핵포기 없이 다종미사일 위협
美 확장억지전략 유지에 한계
전술핵 공유가 실질적 평화 보장

대한민국 안보가 급속히 취약해지고 있다. 북한 핵무기 폐기가 더욱 요원해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경고했던 대로 유일한 군사동맹국인 미국을 격앙시켜 한·미 동맹에 심각한 불신을 자초했다. 일본은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 동맹의 위상과 가치를 자동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됐다는 역설에 내심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런 일이 없더라도 이미 미국에서 먼저 동북아에 중거리미사일(IRBM) 배치와 ‘핵 공유’(Nuclear Sharing) 필요성이 제기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북핵에다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까지 겹쳤다. 미 고위급 인사들과 일선 군 간부들은 그런 방향의 전술핵 운용 프로토콜 논의를 시작했다. 미국은 이미 나토(NATO)와 전술핵 사용을 위한 핵 공유 협정을 시행 중이다. 나토 정상들이 “미국과의 협정은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억지력·방위력 보장을 위해 최소 수준이더라도 핵전력에 의존하는 핵 동맹임을 천명한다”고 밝힌 지 오래다. 한국이 먼저 요구할 경우 고비용 부담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 미국에 의해 제기된 IRBM·핵 공유 의제에 대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도 ‘북한에 핵무기가 있는 한 핵 동맹이어야 함’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두 의제를 동시에 던진 배경부터 확실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질적으로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지형이 일차적 이유다. 방위비 분담금을 센트 단위까지 따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짜로 선심을 베풀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에도 “핵전쟁 억제력을 틀어쥐던 기세”를 언급했다. 7∼8월 단거리미사일 다종세트를 선보이며 한국의 주요시설 타격훈련을 강행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서울 미사일 방어망의 구멍을 찾기 위해 고안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제 미국이 제공하는 ‘맞춤형 확장억지전략’ 정도로는 더 이상 방어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국방부가 공들인 킬체인은 고비용 저효율 수준에도 못 미칠 무용지물 처지다. 중국의 2018년 국방예산은 알려진 액수만 2500억 달러(약 300조 원)에 달한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INF 협정이 사실상 폐기된 뒤 핵연료 추진 미사일 SSC-X9 스카이폴 개발에 혈안이다. 동북아가 21세기 화약고로도 불리는 이유다.

전술핵 한국배치론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대량파괴무기정책조정관은 한국 내 합의가 이뤄져 미국에 공식 요구하면 응하겠다고 말했다. 2012년 5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하는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 5월 미 전략국제연구센터는 보고서 ‘프로젝트 아톰’을 통해 한국 등에 전술핵을 전진 배치함으로써 핵 도발에 즉각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나토식 핵공유와 관련, “검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전술핵은 1958∼1992년 주한미군의 통제, 운용 방식으로 배치됐던 경험도 있다.

현재 반대의 논거로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말한다면 이미 북한에 의해 파기된 상황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말한다면, 미국이 무기를 통제하며 전시에 한해 핵폭탄 사용을 승인하기 때문에 1조(이전 금지), 2조(생산 금지), 6조(핵 감축) 위반 논란도 기우다. 굳이 나토와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 한·일이 사용권한은 부여받되 투자는 미국이 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전술핵과 IRBM과의 연계 문제도 다를 수 있다.

이미 동북아 안보 협력은 나토보다 훨씬 취약하다. 이번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최근 더 커진 한·미·일 3각 안보체제의 균열에 커다란 쐐기를 하나 박아넣은 셈이다. 한·미 동맹 훼손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국방부 관료 입에서 “실망” “강한 우려”라는 비외교적 표현까지 나왔다.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노골적 비아냥까지 들린다. 국가 생존 문제가 걸린 IRBM·핵공유 의제를 풀어가야 할 시기에 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신뢰를 깨는 일을 벌이고 있다. 그 배경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오기(傲氣)든 ‘조국 구하기’든 안보를 저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