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 양국 국교 수립의 토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최근 일본 움직임의 배경에는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은 1965년 체제의 부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개인적 동의 여부와, 대통령으로서 청구권협정 준수 의무는 별개다. 이를 명쾌히 정리하지 않고 한·일 갈등 해법을 내놓아 봐야 무의미하다.

그런데 문 정권의 본심(本心)을 시사하는 발언이 4일 공식적으로 나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정 대변인은 이날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유신 독재 정권의 굴욕적이고 졸속적 협정”이라면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라고 했다. 여권과 협력 관계인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3일 아예 ‘대통령 직속 65체제 청산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개인 차원의 유사한 주장도 많다. 이런 움직임은 문 대통령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 대통령은 1965체제를 부정하고 청산하거나, 최소한 변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2일 “한국이 기본조약을 다시 쓰려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당 대변인이 맞다고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일본이 경제 보복에 나서고, 심지어 일본국제예술전시회에 출품된 소녀상 전시마저 중단시킨 것은 졸렬한 처사다. 그러나 1965년 체제의 부정은 훨씬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1965년 협정은 많은 한계를 안고 있지만, 국가 간 합의로 이뤄진 일이다. 연합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공식 종료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기초한 10여 년 동안의 협상의 결과물이고, 미국이 보증 서다시피 했다. 지금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한·일 관계와 한·미 동맹, 그것을 배경으로 진행된 산업화 과정을 친일과 불의의 역사로 매도하려는 의도 아니고는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