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카라바조 ‘성 마태의 외침’, 340×322㎝, 캔버스에 유채, 1597∼1598년경.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⑬ 회화 발전시킨 ‘명암법’

카라바조, 회화에 빛 끌어들여
극적인 긴장감과 생동감 연출

터너, 바람·대기 색채로 표현
모네, 빛 변화 담은 풍경 압권

19C엔 빛의 구조 ‘입자’로 봐
쇠라, 색 점으로 그린 ‘점묘법’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

20C초 전위예술 ‘미래주의’
역동적인 빛 표현하는데 초점
현재 조각·설치미술서도 진가

회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 빛을 그리면서부터다. 세상 보는 방식을 빛의 해석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빛을 그릴 수는 없다. 빛 그 자체에서 색채나 형체를 걸러내기는 어렵다. 우리는 빛이 만들어내는 현상만을 그릴 뿐이다. 빛을 회화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경지의 회화로 이끈 이는 바로크시대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 출생연도는 분명치 않음)다. 그는 그림 속에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명암법을 개발했다. 화면 속에다 한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화면에 공간의 느낌이 나타나고, 극적인 긴장감과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명암법 출현에 힘입어 회화는 비약적 진화를 이룬다. 20세기 예술의 종합판인 영화 조명도 이런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부분, 캔버스에 유채, 1838년.

이전에도 빛을 회화에 활용한 예는 있었다. 종교적 상징이나 희망의 은유로 빛을 도상화한 그림들이었다. 빛과 그림자를 극적으로 대조시키는 기법을 ‘차로스쿠로’(명암이라는 이탈리아어)라고 하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개발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기법을 주로 형태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썼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명암법은 현실적 타당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다.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1632∼1675)도 빛의 효과에 매료됐다.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정물의 표면, 피부와 질감이 있는 의상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는 은은한 빛 등이 그렇다. 그의 회화의 특징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이는 현실적 공간을 표현하는 것인 동시에 당시 네덜란드의 시대정신인 무역을 통한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심화시킨 이는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1606∼1669)이다. ‘빛의 마술사’로 불릴 정도로 빛의 세심한 간격을 그림 속에 연출해 투명한 공간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빛으로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능했다. 그래서 ‘빛에 스며든 인간의 영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지 크게보기 모네 ‘아침나절의 건초더미, 눈의 인상’, 92×65㎝, 캔버스에 유채, 1890∼1891년.

빛의 물리적 성격을 연구하고 회화에 담기 시작하면서 미학의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근대 정신성인 과학적 사고가 예술 언어로 등장하는 것이다. 영국 풍경화의 낭만성에 과학적 사고로 접근한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회화가 그렇다.

터너는 대기와 빛, 바람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연을 그려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이런 것들이 연출하는 장쾌한 드라마를 화면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그림 하면, 폭풍우 몰아치는 성난 바다나 황금빛으로 빛나는 일몰의 황홀함 또는 대기 속에 녹아든 숲의 신비로운 풍경이 떠오른다.

특히 터너는 빛을 표현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일출이나 일몰, 월광 같은 소재를 통해 빛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고, 공기 속에 스민 빛의 표현은 압권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빛을 색채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터너는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위대한 작가로 알려졌지만 화가이기도 했다)의 색채 이론을 회화로 구현했다. 괴테는 자연의 빛을 색채로 해석했다. 그는 색채를 밝은 빛과 어두운 빛으로 보았다.

이를테면 노란색은 흰색이 어두워졌을 때 나타나는 색이며, 파란색은 검은색이 밝아졌을 때 보이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 빛에 여섯 가지 색(황색, 청색, 주황색, 보라색, 적색, 녹색)이 있다고 분석해 색상환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207×308㎝, 캔버스에 유채, 1884∼1886년.

괴테의 색채 이론은 물리학적으로 입증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보는 경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론가와 예술가들을 크게 자극했고 많은 작업적 영감을 제시했다. 괴테의 색상환에서 보색관계에 있는 색채는 시각적 잔상으로 확인이 된다. 즉 노란색을 오래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보라색으로 보이는 현상이 그렇다.

그런데 빛을 이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은 100년 후에 나타나는 인상주의자들이다. 인상주의 미학의 문을 만든 이는 괴테였고, 문고리를 잡은 작가가 바로 터너였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성질에 과학적으로 접근해 세상 만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회화로 보여주었다. 인상주의 미학에 충실한 것은 빛의 변화로 생기는 순간적인 이미지를 포착하는 일이었다.

이를 평생 성실하게 이행한 작가로는 단연 클로드 모네(1840∼1926)가 꼽힌다. 그는 빛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야외 현장 작업을 좋아했다. 순간적인 빛의 모습을 잡아내는 데는 풍경이 효과적이었기에 모네 작품 대부분이 풍경화다. 자연 풍경은 그에게 있어 작품의 주제인 동시에 소재였던 셈이다. 그래서 자연과의 교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빛의 변화를 회화로 담아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같은 주제를 각기 다른 시간과 다른 환경의 날씨에서 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네의 작품 중에는 연작이 많다. ‘건초더미’ ‘포플러 나무’ ‘루앙 성당’ ‘수련’ 연작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네 회화의 핵심이며 인상주의 미학을 집약해 보여주고 있다.

건초더미 연작에서는 햇빛의 농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모습을 색채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그림자 속의 투명한 빛을 보라색으로 처리해 햇빛에 반짝이는 건초더미의 노란색과 보색 관계로 표현했다. 이는 괴테의 색채 이론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루앙 성당 연작에서는 공기 속에 녹아든 빛을 포착하기 위해 과학자의 자세로 현장 작업을 했다. 1892년 모네는 루앙 성당 건너 편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는 이곳에서 두 달간 성당의 변화를 직접 관찰해 캔버스에 옮겼는데 하루에 14개 이상의 캔버스에 시간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성당을 그려냈다.

수련 연작에서는 물결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하는 빛의 유동적인 모습을 추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1883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지베르니에 대규모 연못을 꾸미고 수련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수초와 나무로 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19세기는 과학적 발명과 발견이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빛에 대한 연구도 그중 하나였다. 세상 만물을 보는 방식을 빛의 분석으로 접근하려는 태도였다. 지금은 빛의 구조를 파장으로 분석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만 당시에는 입자로 보았다. 입자가 사물에 부딪혀 인간의 망막에 영상을 새기는 것을 자연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회화로 옮겨 당대 스타가 된 작가가 조르주 쇠라(1859∼1891)다.

쇠라가 이 세상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32년이었다. 짧은 생에 불꽃 같은 업적을 남겨 요절한 천재로 통한다. 미술사가들은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폴 세잔(1839∼1906) 같은 대가가 됐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인상주의에 색채학적 이론을 도입해 과학적인 회화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색 점을 찍어 형태를 만들어내는 이 방법을 쇠라는 광학적 회화라고 불렀다. 모양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순색의 작은 색 점을 화면에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찍는 것이었다. 색맹 검사표처럼 보이는 쇠라의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형체, 색감, 명암 등이 나타난다. 이를 미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이 ‘점묘법’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분리주의 혹은 신인상주의로 서양미술사에 입적하게 된다.

쇠라의 이런 혁신적인 회화 기법은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신인상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상주의 미술 이론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즉 빛과 색채에 대한 연구와 근대적인 삶을 주제로 삼는 것은 인상주의와 같지만, 회화에 대한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을 회화라고 생각했지만, 쇠라는 그러한 순간 이미지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회화라고 믿었다.

그래서 빛의 입자가 만든 순간적인 이미지를 포착한 그의 그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지된 기념물 같다. 이를 위해 쇠라는 이집트 벽화의 견고한 형태와 기하학적 구성을 연구해 작업에 도입했다.

이런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그림의 크기도 대단하지만, 작은 점을 찍어서 그렸기 때문에 2년이나 걸렸다.

이미지 크게보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빛은 쇠라의 회화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변한다. 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으로 가늠이 불가능한 속도로…. 이런 빛의 성질에서 움직임의 미학을 찾으려고 했던 미술 운동이 ‘미래주의’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전위예술운동으로 시작된 미래주의는 기계문명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빛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주의는 빛의 속도감과 에너지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폭력적이고 도발적인 미학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옹호했는데, ‘로마 제국의 재건’이라는 망상을 구현하려 했던 무솔리니의 민족주의적 파시즘과도 맥이 닿아 있어 부정적 성격도 보인다.

이후 빛에 대한 예술적 관심은 기계와 과학적 아이디어를 접목해 움직이는 조각이나 빛을 이용한 설치미술 등에서 진가를 보이며 현재 진행형에 있다.

(문화일보 7월 2일자 22면 12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