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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의 중심
의원 利害에다 외부 제약 심각
청와대와 원외 당대표 영향력

국회 중심 대의민주주의 위해
원내정당化 재추진 필요 커져
脫대중사회 정치 제역할 해야

이인영, 나경원, 오신환. 각기 국회 교섭단체를 이룬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원내(院內)대표다. 가장 고달픈 직을 수행하는 3명의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직이 중요한 만큼 고단하게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 중요성에 비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가 있다.

국회 의사 과정은 주로 원내대표들 간의 협의나 합의에 따라 이뤄진다. 이 기본 틀이 깨질 경우, 근래 패스트트랙 논란에서 보듯이 국회가 격랑에 빠지고 심한 대결과 교착 국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회의원은 원칙상 각자 독립적 주체로서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만, 실제 운영상 동일 정당의 의원들은 집단으로 행동하게 된다. 정당들이 적절한 구심력을 제공해야 의사 과정이 순기능을 낼 수 있기도 하다. 국회법도 원내 교섭단체 대표 간의 협의나 합의를 기본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각 당 의원들을 대표하는 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원내대표는 온갖 어려움에 시달린다. 상대방 원내대표들과 협상하는 고난도 작업은 차치하더라도, 소속 당에서 원내와 원외(院外) 양쪽으로 제약에 직면한다. 원내에서는, 각자 작은 성을 쌓고 다양한 이익을 추구·고수하는 여러 의원을 달래고 끌어안아야 한다. 쉬울 리 없다.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욕을 먹는다. 계파 간 안배, 균형, 조정도 난제다. 잘하면 정치적 입지를 굳힐 수 있지만 잘못하면 치명상을 입는다.

더 세게 원내대표를 압박하는 건 원외로부터의 제약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당대표는 현역 의원이 아닌 원외 인사다. 민주당의 경우엔 현역 의원이 당대표를 맡고 있지만, 당 권력의 핵심과 원천은 여의도가 아니라 청와대에 있다. 원내대표는 원외의 당 최고권력이 원하는 바를 거부하기 쉽지 않다. 원외는 여론 향방, 선거 승리 등 정치적 판세에 최우선 가치를 두므로, 입법과 행정부 감시를 통해 국정 운영에 일차적 책임을 지는 원내와 입장이 엇갈리곤 한다. 원내외의 우선순위가 다른 경우 원내대표는 원외의 논리를 무시할 수도 없고, 이를 원내 의원들에게 두루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다.

만약 원내대표가 원외의 압력이나 비난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받는다면 그 여파는 입법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아주 심각해질 수 있다. 당 전체에 균열이 생길 수 있고 정치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다. 그 점은 2015년 개정 국회법 파동이 잘 보여 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개정 국회법을 거부하며 여당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을 거친 표현으로 공격했고, 이때 여당에 균열이 깊어져 결국엔 대통령 탄핵,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원내대표를 존중하지 않은 원외 최고권력자의 강압이 당과 정권을 무너뜨린 부메랑이 된 셈이다.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은 원내에 대한 원외의 과도한 간섭이 정치를 망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원내정당화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원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함으로써 현실적 조정과 정책상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공약이었다. 물론 집권 후 원외 기득권과 이념 세력의 반대로 그 꿈은 좌절됐지만, 제대로 된 방향 설정으로, 더 강력히 추진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노 대통령의 원내정당화 제안 이후 17년이 흘렀다. 그 사이 원내정당화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당의 중심을 원외에 두기에는 국민의 정당 성향이 너무 옅어졌다. 탈(脫)대중사회(post-mass society)의 국민은 특정 정당에 강한 일체감을 느끼지 않는다. 국민적 뿌리가 없는 원외 당조직은 극소수 정치 전문가의 권력 놀이터일 뿐이다. 사회가 파편화하고 국민이 원자화된 오늘날, 집단주의적 정당은 국민의 다양한 이익을 대변하는 투입(input)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 정당을 원내 중심으로 운영해 대의 체제의 거버넌스를 기할 수 있도록 산출(output) 기능에 중점을 둬야 하는 이유다.

오랫동안 방치돼온 원내정당화를 주목할 때다. 원내대표들이 원외의 권력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동료 의원들의 입장을 수렴하고 상대 정당과의 소통을 통해 국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습을 다시 꿈꾸어 볼 때다. 물론 꿈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승화시키려면 모든 정치인이 통렬하고 과감하게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