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류춘열 해양경찰청 차장

‘한 소년이 전력 질주한다. 아뿔싸! 무언가 발에 차인 듯하다. 공중으로 붕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넘어져 구른다.’

아마도 넘어진 소년은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을지언정 툭툭 털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바다에서 벌어졌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지난 5월 31일 새벽, 전북 부안군 위도 부근 해상에서 어선이 뒤집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마침 그 시각에 현장을 지나가던 다른 어선이 신고하고 바다에 떠 있던 베트남 선원을 구했다. 해양경찰이 전복된 선박 안으로 진입, 선원 3명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전복 원인을 조사해보니 높은 너울성 파도나 돌풍 때문이 아니었다. 전복된 어선은 폐 로프가 스크루(선박 추진용 회전 날개)에 감겨 넘어진 것이다.

해상 조난사고 중 선박 스크루에 부유물이 감겨 발생하는 사고는 2017년 399건, 2018년 403건 등 매년 400여 건씩 발생한다. 이는 전체 조난사고의 12%를 차지한다. 부유물은 주로 로프나 어망 등으로 어선의 어로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해양 쓰레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박의 스크루가 회전하여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로프에 감겨 스크루가 멈춰 서게 되면 마치 앞에서 이야기한 소년의 달리기처럼 발을 잡아채는 듯한 현상이 벌어진다. 운항 속력이 높았다면 전복의 위험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폐 로프나 그물은 어선에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찢어진 그물을 잘라내 버렸던지 아니면 조업이 끝나고 청소 중에 버려진 것들이다.

‘해양환경관리법’은 폐기물을 바다에 몰래 버렸을 경우 고의나 과실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고 3000만 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톤수 400t 이상 선박과 최다 승선 인원 15명 이상인 선박은 폐기물기록부 비치 의무(위반 시 과태료 300만 원 이하)가 있어 점검이 가능하지만 작은 어선의 경우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조차 알 수 없다. 오로지 어민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어선에서 발생하는 폐그물과 폐 로프 등 해양플라스틱 쓰레기를 되가져와 육상에서 처리해야 한다. 해양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일은 더 이상 해양환경 보전이라는 공익적 목적에서뿐 아니라 어민 스스로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항해하다 보면 바다에 떠다니는 폐 로프나 그물 등 해상쓰레기로 인한 사고를 쉽게 접하게 된다. 안전한 항해와 해양환경 보전을 위해 바다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일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