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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현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마약의 공급과 수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누구라도 국외여행 과정에서, 또는 인터넷을 통해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유엔의 공식 지표는 아니지만,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이하면 흔히 ‘마약청정국’이라 하는데, 한국은 2015년에 1만1916명을 넘어 그 지위에서 탈락했다. 지난해에는 1만2613명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마약 실태는 미국·유럽에 비하면 아직 양호한 편이란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심각하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입문마약이론(Gateway Drug Theory)’이다. 마리화나 같은 연성 마약에 손댄 투약자들이 헤로인·코카인 같은 강성 마약에까지 손대게 된다는 이론이다. 국내에 많이 유통되는 마약은 마리화나와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인데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성 마약이 합법화된 악영향으로 더 많은 국민의 마약 노출이 우려된다.

둘째, 일정 수준의 임계치를 넘어서면 마약 투약자가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급속히 늘어날 것이란 ‘티핑 포인트 이론’이다. 마약의 급속한 확산을 가져올 임계치는 누구도 사전에 알 수 없으며, 확산된 뒤에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약 공급과 수요는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미리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셋째, 마약이 확산되면 마약과 관련된 각종 경제 범죄와 강력 범죄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마약의 종류와 마약 사범의 성별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결과가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마약 투약과 다른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마약을 걱정하는 여러 시각이 있는 반면에, 마약 확산 차단 방법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나 고민은 크게 부족해 보인다. 정부의 마약 유통 억제 대응책 역시 마약 수사를 강화하는 것 말고는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이 없어 안타깝다.

그러면 마약 수사는 어느 단계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정부의 마약 적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적발되는 전체 마약 가운데 70∼80%가 공항·항만 등 국경에서 적발된다. 주요 마약 밀반입 경로는 국제우편·국제특송·여행자 휴대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육로를 통해 외국으로 오고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사실상 섬나라와 같기 때문에 외국에서 유입되는 마약을 국경에서 통제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따라서 국경 단계에서 철저히 막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결국 문제는, 국경에서 적발을 담당하는 세관과 검찰·경찰이 서로 별개 기관이어서 공항만 마약 적발 단계에서 바로 수사가 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약을 적발한 세관이 수사하지 않고 마약과 마약밀수범을 검·경이 인계해 수사하는 식이다. 또 같은 이유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기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정보가 국경에서의 적발 과정에 피드백되지 않는다. 기관 간에 공조를 하기는 하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 마약 사건의 수사 착수 단계에서 분권화에 대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언급이 눈길을 끈다. 검·경 수사권 조정처럼 마약 수사와 관련한 기관 간 수사권 문제도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마약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와 통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수사만큼은 현장에 밀착된 세관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다.

우리나라가 예전처럼 마약청정국으로 되돌아가려면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국경에서 철저하게 막는 것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이 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