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페르시아의 판관 시삼네스가 부당한 판결을 내리자 캄비세스 왕은 산 채로 그의 가죽을 벗겨 판사석에 깔고, 시삼네스의 아들을 새로운 판관으로 임명해 거기서 판결하도록 했다. 사회지도층의 책임을 경고한 것이다. 헤라르트 다비트의 ‘캄비세스 왕의 판결’(1498). 자료사진

- 스킨 인 더 게임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원호 옮김 / 비즈니스북스

관료·학자·전문가 등 지도층
주요결정 내리며 책임은 회피
사회 전체를 위기 몰아넣기도

핵심이익이 걸려 있는 사람이
직접 관여하며 사회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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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인 더 게임’은 ‘자신이 책임을 안고 현실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역으로, 책임지지 않는 자한테 현실 문제의 해결을 맡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탈레브는 주장한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행동과 책임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균형’이다.”

밥 루빈은 씨티그룹 회장으로 일하는 10년 동안 1500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챙겼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 씨티은행을 지급 불능 위기로 몰아넣고도, 루빈은 실제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엄청난 퇴직금을 챙겨서 물러났을 뿐이다. 국민 세금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후에 말이다. 여기에는 행동과 책임의 균형이 없다.

투자 펀드도 비슷하다. 펀드 운용자는 어떻게 해도 돈을 번다. 투자에 성공하면 엄청난 상여금을 챙길 것이고, 투자에 실패해도 이미 높은 연봉을 받은 데다 두둑한 퇴직금이 예정돼 있다.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게 하려면, 펀드 운용자가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쏟아 넣지 않은 펀드에는 들지 말아야 한다. 고객보다 자신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는 펀드는 믿을 수 없다. 미국의 헤지펀드는 금융위기 이후 이렇게 개편됐다. 행동과 책임의 균형을 달성하도록 말이다.

탈레브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극도로 복잡하므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류 사회는 학자·관료·전문가 등과 같은 대리인을 길러내 이들이 모두를 위한 판단을 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결정(행동)에 따르는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 즉 자신이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집단이나 개인의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극히 드물게 발생하지만 사회 전체를 순식간에 위기로 몰아넣는 ‘검은 백조’를 날아다니게 만든다.

탈레브는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말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 경제학자와 일반인 사이의 괴리, 관료와 상인 사이의 괴리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한 사회의 지도층이 이 괴리를 이용해 결정의 권력을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가 위기에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므로 세상이 실제로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인지부조화에, 위험은 모두한테 떠넘기고 잇속은 호주머니에 챙기는 윤리적 파탄에 사로잡히기 쉽다. 현실 판단이 엉망인 데다 일이 벌어져도 당사자가 책임질 게 없는 사회가 잘될 리 없다. 사회 전체 시스템이 빠르게 부패하면서 취약성이 높아지고, 금융위기 같은 파국이 다가올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사람이 직접 그 일에 관여해야 한다.” 탈레브에 따르면, 현장에 나갈 일이 없는 이들이 모든 것을 정하지 못하도록 분권화·지방화를 통해 책임이 면제된 의사결정자 숫자를 최소화하는 것,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확실하고 그 규모가 예측되지 않을 때는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것, 전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현장에서 문제를 분산해 처리하도록 부분적·지역적 해결을 시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좋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실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실험실의 합리성을 현실에 실제로 적용할 때 극히 신중해야 한다. 조작된 확률에 근거를 두고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리라고 주장하거나, 발생 확률이 극히 낮다면서 위험을 감수하자고 하는 이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실험실 확률은 현실 확률과 상관없다. 가령, 강물의 깊이가 평균 120㎝라면, 걸어서 강을 건너지 않는 게 낫다. 발을 잘못 디디면, 무조건 목숨을 잃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을 사람들이 함부로 기준을 정해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실에서 실제로 더 존중받아야 하는 판단은 제빵사, 구두 수선공, 택시운전사, 회계사 등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말에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세계에서 과감한 도전과 조심스러운 접근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이 얻은 생존의 논리, 즉 시간의 시련을 견뎌 얻은 합리성(현실의 확률)이 깃들어 있을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을 한 순간에 생존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므로 이들은 “파멸을 유발할 수 있는 전략이라면 아무리 이익이 커도 포기”할 줄 안다. 책임만큼 항상 행동하는 것, 민중의 지혜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지혜를 존중할 수 있을까. 탈레브는 말한다.

“머리가 검은색일 때는 원인에 집중하고 결과는 무시하라. 머리가 회색일 때는 원인과 결과 모두를 따져 보라. 머리가 흰색일 때는 원인은 건너뛰고 결과에 집중하라.” 적확하고 아름다운 충고다. 444쪽, 1만9800원.

장은수·이성과감성콘텐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