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흠정역성서와 영미문화 / 박영배 지음／지식산업사

“왜 흠정역성서인가? 이 성서 이전에 나온 여러 성서들(틴들, 위클리프, 제네바, 비숍 등)의 표현은 흠정역성서에 이르러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려한 영어로 탈바꿈하였으며 뒤이어 나온 현대 영역 성서의 훌륭한 원천이 되었다.”

국내 대표 영어학자로 저자인 박영배 국민대 명예교수는 책의 서두에 ‘흠정역성서(欽定譯聖書)’의 가치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흠정역성서는 영어가 하나의 언어로 프랑스어를 제치고 그 존재를 확고히 드러내게 된 영국의 르네상스 시기 말에 선보였다. 흠정(欽定)은 임금의 명령에 의해 저술되거나 편찬된 서적을 가리키는 말로 흠정역성서는 당시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첫 번째 왕으로 스코틀랜드의 왕이기도 한 제임스 1세(재위 기간 1603~1625)의 명에 의해 새로운 성서 개역 작업 후 발간됐다. ‘킹 제임스 성서(KJV·King James version)’라고도 불린다. 왕의 주재 아래 54명의 학자가 동원된 개역 작업은 1607년에 시작돼 1611년에 끝났다.

17세기 초에 영어의 역사에 등장하는 흠정역성서는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과 함께 현대 영어 형성에 가장 근원적인 영향을 미친 성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흠정역성서의 수많은 어휘 표현 가운데 구약성서(39권)에서 55개, 신약성서(27권)에서 55개 등 모두 110개를 선별해 흠정역성서의 원문을 싣고 이와 관련된 내용과 배경을 설명하는 한편 오늘날 이 어휘와 표현이 영미문화(문학, 예술, 미디어, 음악, 영화 등)에서 어떤 의미와 속성을 지니고 쓰이고 있는지 참고자료로 제시한다. 또 윈스턴 처칠이나 버락 오바마의 연설, 간디 자서전 표현,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을 인용해 성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독자들을 영어 문학세계로 안내한다. 따라서 책은 신자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성서를 통해 영미문화의 진수를 만나게 해준다.

저자는 “흠정역성서가 나온 지 400여 년이 지나 쉽고 평범한 영어로 번역된 수많은 영역 성서가 출판돼 나왔음에도 흠정역성서에 쓰인 문어체나 고어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하고도 시적이며 다양한 색채를 지닌 어휘와 고유한 표현, 그리고 어순을 고려하지 않은 장엄하고 강한 느낌을 전달해 주는 웅장한 표현기법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며 “흠정역성서가 지닌 그 같은 매력을 성서 원문과 해설을 통해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368쪽, 1만9000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