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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한반도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많은 정보가 과연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신호’인지, 아니면 의미 없는 ‘잡음’일 뿐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번 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북한은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강한 비난을 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 11일에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국내 일각의 기대와 같이 북한에 전해 줄 만한 특별한 유인책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입장이 우리 정부와 차이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필자가 볼 때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 우리 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상태(end state)에 대해서는 한·미 간에 의견이 일치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과연 북한과 우리 정부 사이에도 이 최종 상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는 것일까? 이는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용한 신호보다 오히려 잡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른바 ‘굿 이너프 딜’이 정상 간에 논의돼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무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를 통해 북한에 전달될 수 있는, 공개되지 않은 무언가를 얘기했을 가능성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된 것과 달리 트럼프가 북한에 전달될 뭔가 다른 얘기를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싱가포르 회담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이면 합의에 대한 추측이 많이 제기됐다. 북한 정권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결정 없이 비핵화 협상이 불가능하므로 그의 결심이 공인되기까지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 정권과 달리 민주주의 체제의 미국이나 한국이 공개적 합의와 다른 내용의 이면 합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행동 방식으로 그가 이면 합의를 할 가능성을 말하지만, 미국 정치 체제에서 그가 이면 합의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행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 역시 북한의 새로운 길이 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북·러시아 정상회담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현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대내적인 권위 유지의 목적이 강하다. 러시아가 지금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가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향후 계산에 영향을 줄 만한 현실적인 이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엔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유지되고, 유엔 제재 유지를 위한 미국의 단독 제재가 변하지 않는 이상 현재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미국이 목표로 하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북한이 할 것인지가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의 구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모든 정보는 잡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호와 잡음을 판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해 놓은 답을 뒷받침한다면 그것이 잡음임이 명확하더라도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