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법원과 검찰의 갈등 기류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김명수(왼쪽 사진) 대법원장이 지난달 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수원고등법원 개원식 및 수원법원종합청사 준공식’에서 치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下) 검찰 독점적 기소권의 문제점

수사 협조땐 재판에 안넘겨
플리바게닝으로 암묵적 압박
3개월 수사종결도 나몰라라
“형사사건 檢서 사실상 끝나”

재정신청·헌법소원 있지만
기소 처분까진 극히 희박

“美기소배심·獨기소법정주의
기소결정 견제장치 도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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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인 검찰이 기소 여부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주체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이 나라(한국)는 법치국가가 아니라 독재국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서울지국장은 2016년 저서 ‘나는 왜 한국에 이길 수 있었는가’(미번역)에서 한국 검찰의 기소 행태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당일 행적에 대해 사생활을 거론한 기사를 게재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가토 전 지국장은 책에서 자신을 재판에 넘기기까지 한국 검찰이 얼마나 청와대 눈치와 여론을 살피는지, 그 과정을 세세히 묘사했다. 2015년 검찰은 청와대 의중대로 기소 결정을 내렸지만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항소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4년 뒤인 2019년 한국 검찰은 당시 법원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면서 또다시 ‘가토 다쓰야’를 문제 삼았다. 당시 재판부가 “언론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보도 내용 자체는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해당 재판부에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명시하라”고 시켜 직권남용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17일 “본인들의 기소 권한이 남용됐다는 점을 뉘우쳐야 할 검찰이 적반하장으로 또 다른 기소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검찰을 보며 가토 전 지국장은 어떤 생각을 할까.

◇檢 ‘무소불위 기소권한’=법조인들은 “검찰을 무소불위로 군림하게 만드는 최종병기는 기소 결정권”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소편의주의를 택한 우리나라는 검찰이 수사종결권한(기소 여부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한에는 정치적 계산 등 여러 가지 셈법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아직 법적인 근거가 없는 플리바게닝(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이 밀실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수사에 협조하면 재판에 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룰이 작용하고 있기때문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우리나라에서 형사사건은 사실상 검찰 단계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고 평가했다.

고위직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전대미문의 사법부 수사가 특히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외하고 전·현직 판사 100명을 넘게 수사한 검찰은 지난달 5일 10명만 추려내 추가 기소했다. 기소대상자에는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게다가 검찰은 나머지 판사들에 대해 기소 여부 결정을 보류한 채 장기간 움켜쥐고 있다. 검찰에 법원수사 종결을 강제할 수도 없다. 3개월 만에 수사를 종결토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은 훈시규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법원장 출신 법조인은 “시간에 쫓기지도 않은 채 입맛대로 기소하는 건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한”이라면서 “검찰이 법원에 목줄을 채운 형국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암담하다”고 한탄했다. 검찰은 지난 5일에도 다소 상반된 수사종결 처분을 내렸다. 건설업자에게서 취업알선 명목으로 1000만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는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비공개 예산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유출한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국회의원에겐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재정신청·헌법소원은 사후약방문=우리나라에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하는 외부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고소·고발인은 일단 ‘검찰 항고 전치주의’에 따라 상급기관인 고등검찰청에 불복 항고 절차를 거친 뒤, 외부기관인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도 가능하다. 다만 재정신청이나 헌법소원이 공소제기 결정이나 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이나 헌재로선 불기소된 사건의 수사자료만을 갖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봐주기 수사 등 처음부터 수사 자체가 부실하게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판단 근거가 희박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영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정신청 관련 논문에서 “검찰의 수사 미진으로 인해 법원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을 경우 재정담당 변호사(공소유지변호사)에게 보완수사를 명하도록 하는 등 개선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기소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다른 국민 기본권에 관한 중요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헌재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전 헌법재판관은 “최근 들어 불기소 관련 헌법소원이 전체 헌법소원 사건의 80%에 달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이 수사 종결을 하기 전 단계에서 외부 견제장치가 작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후적인 방어기제에 불과한 재정신청이나 헌법소원이 근본적인 검찰 기소권 견제장치가 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법조인들은 주로 국민이 기소 여부를 심사·결정하는 미국식 기소배심제(Grand Jury)를 주장한다. 실제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월 기소배심제를 모델로 하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도입해 국민적인 의혹사건 등에 한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배심원 비용 문제, 여론의 정치적 쏠림이 심한 현실 등을 감안하면 기소배심제를 그대로 따르기엔 무리다. 독일에서는 중대 부패범죄의 경우 객관적인 혐의가 입증되면 기계적으로 재판에 넘기게 하는 기소법정주의를 따르는 동시에 피해자 부대공소(공소참여)제도가 운용됨에 따라 기소 강제 결정이 내려지면 공소 수행이 공정·충실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 역시 피해자 권리보호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사인소추제도를 두고 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영미법계든 대륙법계든 대부분의 선진국은 기소 결정 단계의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