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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고독의 기회를 놓친다. 사람이 생각을 그러모아 숙고하고 반성하고 창조하는 능력, 그 마지막 단계에서 타인과의 대화체에 의미와 본질을 부여하는 능력의 바탕이 되는 숭고한 조건을 잃는 것이다.”(21쪽)

2017년 세상을 떠난 명쾌하면서도 따뜻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고독해야 할 이유입니다. 리커버판으로 재출간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속 한 구절입니다. 책은 바우만이 불안한 우리 시대에 보내는 편지 44편을 묶은 것으로 이탈리아 여성지에 연재한 글입니다. 그만큼 바우만의 그 어떤 책보다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인용문은 책 제목으로 뽑힌 44편 중 한 편의 한 부분입니다.

알려졌듯이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으로 기억됩니다. 가족, 직장 같은 사회 제도를 포함해 모든 것이 견고하고 고정돼 확정적이었던 ‘고체의 시대’를 지나 모든 것이 액체처럼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에 들어섰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것 없이 유동하는 시대, 우리는 고독의 자유도 빼앗겼습니다. 바우만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24시간 연결돼 클릭 한 번이면 친구들이 나타나는데 누가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겠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합니다. ‘상시 접속’ 중인 사람들은 온전하게 충분히 혼자일 수 없고, 혼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흔히 짐작하듯 네트워크 친구 때문에 실제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혼자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우만은 그런 고독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길. 288쪽, 1만6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