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이재만 화각장 보유자가 소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화각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보유자 뒤편에는 화각 공예품으로 장식한 가구들이 놓여 있다.

⑦ 이재만 화각장

화각 그림 넣고 기물에 붙이고
옻칠·광택내기 등 ‘종합 예술’
화려한 탓에 中 공예품 오해도
오직 한국에만 있는 전통 작품

어릴때 사고, 손가락 2개만 멀쩡
어머니가 장애극복 차원서 권유
2m 높이 화각불탑 만드는게 꿈

화각(華角)이란 소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판을 말한다. 이러한 화각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을 화각장이라고 한다. 화각의 뒷면에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린 다음 오방색(청, 적, 황, 백, 흑)이나 간색(오방색 사이의 색깔, 녹, 벽, 홍, 유황, 자)으로 봉황이나 용, 모란, 십장생 등의 그림이나 문양을 넣기 때문에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그 같은 화려함 때문에 화각은 궁궐 등에서 장롱을 비롯해 문갑, 경대, 반짇고리와 실패, 빗 등 안방 가구와 여성용 기물, 봉채함 등에 쓰였다.

이재만(66) 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보유자다. 이 보유자는 고 음일천(1903~1973) 선생 문하에서 화각기술을 배워 스물세 살부터 40여 년 동안 오로지 화각장으로서 한길을 걸어 왔다.

“화각장을 보면 많은 사람이 그 화려함 때문에 중국 공예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화각이야말로 일본과 중국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공예 예술입니다. 그럼에도 화각 전문장인이 많지 않은 것은 전문적인 장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지체 높은 양반 가문에서 문인화 그리듯 취미로 화각 공예를 즐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개장과 달리 맥이 끊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재만 보유자가 화각기술을 음일천 선생에게서 배울 즈음에는 국내에 화각장으로서는 음 선생이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후기 화각 공예가 한때 성했으나 일제강점기 들어 일본 장인들의 하도급업자로 전락했고, 일본인들은 화각 대신 셀룰로이드와 유리에 그림을 그리게 해 화각 공예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인천 남동구 간석1동의 공방에서 만난 이 보유자는 “화각 공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해 수요는 별로 없지만, 오랜 노고 끝에 작품 한 점 한 점이 완성될 때의 보람은 화각장 당사자만이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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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공예 작품 한 점이 탄생하기까지는 각지에 무늬(그림)를 그려 넣는 ‘그림’ 작업 외에 소뿔과 뼈를 잘라내 화각을 얻는 공정에서부터 그림과 문양이 그려진 화각 즉 각지를 부레풀로 기물에 붙이는 작업, 이어서 경첩, 들쇠 등으로 모양을 드러낸 기물에 옻칠과 광택 내기 작업까지 해야 한다. ‘종합예술’을 방불케 한다.

특히 주먹보다 큰 소뿔을 종이보다 얇게 만들어내는 공정이 몹시 까다롭다. 소뿔을 삶아서 뼈를 발라낸 후 이를 잘라서 종이처럼 얇게 깎아내야 한다. 3~4년 된 황소 뿔만 사용한다. 최근에는 농가에서도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경우가 많아 품질 좋은 소뼈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풀을 먹고 자란 황소의 소뿔은 거의 반투명으로 맑고 깨끗한 반면 사료를 먹은 소의 소뿔은 잡티가 많고 불투명하다. 소뿔이 종이보다 얇은 화각판(각지)이 됐을 때 비로소 화각공예는 시작된다. 0.023㎜까지 깎여야 그림이 선명하게 보인다.

“처음에 음 선생님에게 화각 공예를 배울 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저는 당시에 만화를 꽤 잘 그려 극장 간판도 그려주고는 했는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후회도 많이 했죠. 그러나 그토록 어렵게 배웠기 때문에 각지 만드는 작업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작업을 배웠으니 다행입니다.”

공정이 그처럼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수요는 많지 않기 때문에 화각을 배우려는 이도 많지 않다. 현재 화각공예 전수교육조교가 없으며, 두 아들이 이수자로서 활동 중이다.

이재만 보유자의 공방을 찾아 그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의 성치 못한 손가락을 보고 놀란다. 두 살 때 화로를 짚어 손가락이 다 녹아내린 후 성한 손가락은 두 개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그 손가락으로 각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옻칠을 하는 모습은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손으로 화각장이 된 데는 집안 내력도 한몫한 것 같다. 이 보유자의 할아버지는 단청장이였고,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수 솜씨로 유명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떠밀었어요. 화각공예를 해보라고. 손가락에 문제가 많으니 수작업으로 하는 화각공예를 익혀 장애를 극복해 보라는 취지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답답하고 매력도 못 느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선택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공예품은 많이 팔리지 못해 생활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대신 저는 화각공예 일이 좋습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화각불탑을 만드는 거죠. 높이 2m짜리 홍송 목탑에 화각공예품을 붙여 탑을 완성할 계획입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