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정치학

세계 최악 저출산 백약이 무효
출산율 높이기 최선 다하면서
다민족·다문화 대책 병행해야

개방국의 폐쇄국 능가는 당연
미국·독일 같은 이민제도 참고
포용국가 위한 제도 정비 시급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7로 1.0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것은 세계 최초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의 출산율이다. 인류 역사상 대규모의 기근·전염병·전쟁의 시기를 제외하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여 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이후, 역대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135조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결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를 안전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회로 개조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OECD 회원국 중 출산율 최하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취임 이후, 2050년까지 인구를 최소한 1억 명으로 유지하기 위해 내각에 ‘일억총활약담당상’까지 두어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으며, 한때 세계 출산율 최하위였던 프랑스가 어떻게 해서 유럽연합(EU) 국가 중 합계출산율 최고인 2.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세라 하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공지능, 이민, 건강한 노년층의 증가로 더는 인구증가 정책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퍼 교수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는 장·단기적 관점에서 개방적인 다인종·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피가 섞여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고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16세의 나이에 배를 타고 1만㎞에 이르는 바닷길을 건너 가라국의 김수로왕과 혼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물론 이는 설화에 불과하지만, 우리 민족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화산 이씨(花山 李氏)의 시조인 이용상은 고려 말 베트남에서 귀화했으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두란첩목아, 즉 이지란(李之蘭)은 만주족이었다. 특히, 초기의 조선은 만주족·몽골족·위구르족 등 다양한 인종이 섞인 사회였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5000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잘못된 교육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국가 중 하나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미국 코넬대 베네딕트 앤더슨, 일본 오사카(大阪)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교수 등 많은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민족이란 허구로 만들어진 개념으로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특히, 근대 민족(또는 국민)국가 성립 이후, 민족주의의 개념은 위정자들이 통치의 편의와 수단으로 사용·강화하고 있다.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중국은 폐쇄적인 국가인 반면, 미국은 세계의 우수한 인력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이민국가라는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전통·관습·가치·제도·법률을 수용하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국민국가적 성격의 프랑스와 달리, 게르만 민족의 혈통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민족국가인 독일도 통일 전 인구의 약 10%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뤘으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최근에는 입대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EU 출신 용병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8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33만 명,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1500만 명을 넘었다. 아울러 전 세계 176개국에 72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우리 또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방문객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이미 1795년에 출간한 ‘영구평화론’에서 외국인에 대한 후의(厚意)를 세계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한 사회의 동력과 활력이 동종번식이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들의 포용과 통합에서 다양성·창의성이 비롯됨을 인식하고, 다인종·다민족·다문화 사회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꾸준한 교육을 통해 의식을 바꾸어 나가야 할 때다. 이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제시한 포용국가도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