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대표적 도시재생 사례

쇠락한 세운상가 존치·개발
서울 도심 랜드마크로 부활

‘메이커스 큐브’ 19개 업체
증강현실·3D프린팅 등 개발
“부품 구하기 쉽고 협업 잘돼”

음식점·커피숍·공방도 입점
SNS 명성 얻고 손님 줄서

“‘다시 세운’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이곳에는 50여 년 전부터 전자 관련 부품을 취급하는 상가와 미래 한국 산업을 이끌 현재의 스타트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시 세운은 전체를 연결하는 공중보행교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쇠락한 세운상가를 도시 재생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미래를 창조하는 공간을 만든 거죠.” (나호선 나호선일렉트릭 대표)

11일 서울 중구 ‘다시 세운’ 보행 덱(deck)에 설치한 스타트업 전용 공간인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 입주한 청년 스타트업 19개 업체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제품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는 증강현실(AR), 3D 프린터, 반려 로봇, 전자 의수 등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들은 기존 세운상가와 주변에 입주해 있는 1600여 개 부품, 조립, 가공 업체들과 상생하며 제조업 분야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 혁신과 창의력으로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수시로 반상회, 자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전문 분야 외에 새로운 ‘제품’ 만들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들이 협업을 통해 만든 제품으로는 스마트 농장 장비, 블루투스 스피커 등이 있다. 도시 재생을 통해 ‘다시 세운’으로 재탄생한 세운 상가가 4차 산업 혁명 일자리 창출의 코어 역할을 하며 지역 경제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면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회로의 구조를 설계하고 다른 사람이 제품 기본 틀 등을 3D프린터 등으로 만들어 내는 4차산업 생태계를 형성했다.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어렵지는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기존 세운상가에서 30∼40년 동안 기술로 갈고 닦은 ‘장인’을 찾아가 문제점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세운상가가 ‘없는 것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는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제조기반 환경도 좋고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지리적으로도 서울 한복판이라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도 편해 스타트업을 도전하는 젊은이에게는 최적합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스타트업만 입주해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중구청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한 음식점, 커피숍, 공방, 베이커리 등 다양한 먹거리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가게에는 테이블이 3∼4개지만 SNS를 통해 유명해지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세운상가가 도시 재생을 통해 서울 도심의 관광지이자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이곳에 새로 둥지를 튼 이들도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한 우물만 판 ‘고수’들도 많다. 이들은 자신이 하던 기존 일들을 하면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부품을 비롯, 설계, 용접 등에 대한 협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회로 기판을 제작하는 한 관계자는 “다시 세운이 1차 준공을 하고 스타트업들이 입주할 때 기존 상가에 있던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 저러다 지쳐 나갈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보니 그들과 대화하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 미래한국을 이끌 기술자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그러니 서로 돕고 논의하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세운에서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일 오후 2시에 진행하는 ‘한발 두발, 세운’이라는 프로그램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술장인, 세운상가의 전반적인 공간과 풍경들을 둘러본다. 이 외에도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술장인, 세운상가 마이스터 16인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다시 세운 장인코스’와 세운 메이커스 큐브를 돌아보고 전문 메이커들과 함께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참여형 투어인 ‘다시 세운 산업코스’도 준비 중이다.

지난 1968년 개장한 세운상가는 당시 최고의 최신식 주상복합 건물이다.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에 이르는 8개 건물(현재는 현대상가가 철거돼 7개 건물)을 말한다. 하지만 노후화와 관련 산업 쇠퇴로 2009년 이 일대 7개 상가 빌딩을 철거하고 녹지 축을 복원한 뒤 고층개발을 계획하기로 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2014년 3월 시설을 존치하기로 결정하고 2015년에 도시 재생을 시작했다. 다시 세운은 지난 2015년 1월부터 서울시가 1190억 원(재생기금 56억 원 포함)을 들여 이 일대 7개 건물 43만9356㎡에 대해 2020년 말까지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7년 9월 종묘∼다시 세운 광장∼세운상가군(세운·청계·대림상가)에 이르는 1단계 사업을 완공했다.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사업에는 599억 원을 들여 을지로에서 세운 상가까지 3개 상가와 호텔 등에 대해 도시재생을 하고 있다.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