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자유한국당이 19일 의원총회에서 공개한 김태우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의 첩보 보고서 목록 사진. 한국당은 이 목록을 근거로 청와대가 여야 정치인과 언론사 등 민간에까지 무차별적인 사찰을 벌인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한국당 ‘김태우리스트’ 폭로

정치인·교수·언론 등 포함
전방위 민간인 사찰 의혹

靑 “과거관행 따른 개인일탈”
金 “윗선 보고 지시 있었다”

전문가 “구체 지시 없었어도
사실상 방조·묵인 가능성”

민간인과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이른바 ‘김태우 리스트’ 100여 건을 자유한국당이 공개하며 20일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소속이었던 6급 공무원 김태우 수사관과 청와대의 진실공방도 격화되고 있다. 윗선과의 보고·지시 관계에서 문건을 생산했다는 김 수사관의 설명과 달리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유전자엔 민간인 사찰은 없다”며 과거 관행에 따른 개인 일탈로 몰아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윗선의 묵인이나 방조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정권 인사들 찍어 내기 = 한국당이 공개한 문건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임명된 공공기관장 및 임원들에 대한 보고가 포함돼 있다. ‘한국금융연수원장 부적절 처신동향’ ‘산업은행장 관련 비위동향’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보고들은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에 대한 보고로 특감반의 직무 범위에 해당할 수 있지만 사실상 전 정권이 임명한 인사들을 찍어 내기 위한 ‘표적 감찰’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보고서의 대상이 된 조영제 금융연수원장,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올해 4월, 8월에 각각 임기 전에 사표를 냈다. 조 원장과 이 행장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6월과 2017년 9월 임명됐다. 지난해 7월 김 수사관의 보고서에 등장한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도 임기를 5개월 남겨두고 사표를 냈다. 그밖에 앞서 청와대가 해명한 노무현 정권 인사와 관련된 비트코인 사업 관련 보고와 함께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를 지목한 보고 등 민간인 사찰 의혹 보고도 포함됐다.

◇격화하는 진실공방 = 청와대와 김 수사관의 진실공방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청와대 측은 일부 문제 없는 보고서가 윗선에 보고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전 정부에서 민간 영역까지 다양한 첩보를 수집했던 관행을 못 버리고 민간 영역 첩보를 보고해 윗선 보고 없이 폐기 처분하고 경고했다”며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청와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 지시 없이 스스로 생산한 문건”이라고도 했다.

김 수사관의 얘기는 다르다. 외근이 많은 특감반원의 특성상 초기 보고의 경우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고 보고서 초안 작성은 그 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상부의 지시나 묵시적 승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김 수사관 주장의 요지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전 조율이 우선 이뤄지기 때문에 자의적 보고서 작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청와대 묵인 있었을 것”= 전문가들은 보고체계상 적어도 윗선의 묵인이나 방조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정보관들은 업무 성과로 칭찬받을 수 있는 정보만 가져온다”며 “특정 정보는 수집하지 말라고 진짜로 당부하면 절대로 안 가지고 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수사관에게 청와대가 진짜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보조직을 직접 운영하면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위 공직자 관련 비위첩보 수집 기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에 있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통치권자의 의중을 생각해 통치권자의 구미에 맞는 비위첩보 수집만 선별 보고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