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검찰이 청구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7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해 “공모관계 성립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했고, 고 전 대법관을 담당한 명재권 부장판사도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를 기각사유로 꼽았다. 두 부장판사는 앞서 각각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두 전 대법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그런데 표현은 좀 달라도 모두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검찰이 작성한 구속영장 청구서만 박 전 대법관이 158쪽, 고 전 대법관이 108쪽에 달한다. 그게 무색하게 제동이 걸린 것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두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의 연결 고리가 명확하지 않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수사가 원칙이고 법원이 범죄 혐의 소명에 의문을 가진 이상 영장 기각은 피할 수 없다. 검찰이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혐의 내용을 보강해 다시 법원 판단을 받으면 될 일이다. 임 전 차장 구속 이후 두 전 대법관을 연결 고리로,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가려던 검찰의 구상은 일단 차질을 빚을 것이다. 이른바 ‘사법 농단’ 프레임을 짜놓은 검찰 수사가 법률과 증거에 의거하기보다 ‘적폐 낙인찍기’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박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민사소송 개입 등 30여 개, 고 전 대법관은 판사가 연루된 건설업자 뇌물 재판 개입 등 20여 개 의혹에 각각 엮여 있다. 두 대법관 모두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연루 의혹도 받고 있다. 위법이 있었다면 처벌을 받아야지만 이들은 “정당한 업무지시”였다고 완강히 부인하는 만큼 유·무죄 판단은 섣부르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3차례에 걸친 자체 조사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재판 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돈봉투 만찬사건’으로 기소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도 최근 대법원 무죄와 면직 무효 판결을 받았다. 적폐몰이식 수사, 하명(下命)수사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