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번 손길로 만들어낸 합죽선(合竹扇)… 부채 그 이상, 전통을 잇다

이미지 크게보기 ‘전통 부채’ 장인인 김동식 선자장이 전북 전주의 작업실인 ‘동성공예’에서 직접 갈고 다듬은 부챗살을 보여주며 부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① 김동식 선자장

얇은 대나무살 맞붙인 합죽선
‘50살 부채’는 양반가·왕실용
한의사는 선추에 침통 달기도

고종에 진상하던 외조부 사사
60년 동안 ‘합죽선 외길’ 걸어

4대째 물려받아 아들에 계승
“소득 적고 힘들어 전수생 없어
생계 걱정 않게 지원해줬으면”

“열네 살 때부터 합죽선을 만들었으니 벌써 60년 세월이 흘러갔네요. 지금은 합죽선 만드는 기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동식(75) 옹은 선자장(扇子匠·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이다. 선자장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이다. 우리 부채는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뉘는데 김 선자장은 그중에서도 접부채의 하나인 합죽선(合竹扇)을 만든다. 합죽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합죽선은 얇은 대나무 살을 맞붙여 만든 부채다. 예로부터 양반들은 둥근 부채보다 합죽선을 더 선호했다. 선비들이 그림과 시구를 그려 넣어 풍류를 자랑했던 것도 대부분 합죽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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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있는 김 선자장의 작업장인 ‘동성공예’를 지난 10일 찾았다. 200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선자장으로 지정된 그는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 첫 번째 선자장으로 선정됐다. 합죽선 장인의 집답게 부채 시즌이 지난 초겨울인데도 아래층 거실에서부터 옥상에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그의 작업장에서는 물에 불리거나 끓인 대나무와 얇게 깎아낸 대나무 등 재료에 아교풀 냄새까지…. 부채 제작 공정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부채 하면 요즘 사람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만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용도가 다양했습니다. 부채만 보고도 그 주인의 신분과 직업까지 알 수 있었어요. 합죽선 크기나 선추(부채를 장식하는 매듭)에 따라 신분이 나뉘었다고 합니다. 대나무 살이 40개인 ‘40살 부채’와 50개인 ‘50살 부채’가 있는데, 50살 부채는 양반가나 왕실 사람들만 지니고 다녔죠. 또 한의사는 선추에 침통을 달고 다니고, 지관은 나침반을 달고 다녀 직업도 알려 주었습니다.우리 풍속화에도 많이 나오지만, 조선 시대에는 부채가 여자들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쓰였죠.”

1943년 전주시 인후동 가재미 마을에서 태어난 김 선자장은 60년 동안 합죽선을 만드는 외길을 걸었다. 14세 때 외조부 라학천을 스승으로 삼아 기술을 배웠다. 그의 외가는 140년 동안 부채를 만들어 온 부채 명가로 외증조부 때부터 부채를 제작했으며, 그의 외조부는 고종 황제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뛰어난 합죽선 명인(名人)이었다.

“배고픈 시절, 합죽선을 배우고 밥까지 준다니 무턱대고 좋았습니다. 그때는 입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습니다. 합죽선이 결국 대를 이은 작업이 되고 말았네요.”

부채는 14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탄생하는 까다로운 공예품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부채 만드는 과정도 6개 공정으로 분업화돼 있었다. 부챗살을 만드는 골선방,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기는 낙죽방, 빛이 나게 하는 광방, 선지에 산수 등을 그려 넣는 그림방, 부채에 선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의 목을 묶는 사복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처럼 분업이 필요한 과정인데도 김 선자장은 모든 과정을 혼자 한다. 전수생이나 이수생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가끔 배우러 오지만 월급이나 휴일 등 근무여건을 듣고 나면 모두 손사래를 치며 발길을 돌린다. 전수장학생이 돼야 고작 25만 원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정도다. 그나마 아들 김대성(42) 씨가 이수자로 나서 부친의 일을 돕고 있는 형편이다.

“외가의 가업을 4대째 물려받아 지금은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어요. 사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돈이 안 되는 것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40살 부채가 20만∼80만 원, 50살 부채가 150만 원부터 350만 원 정도 하는데 예전보다 주문이 신통치 않아요. 외국에 출장 가는 분들이 가끔 선물용으로 구입하죠. 정부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보유자들이 생계에 쫓기지 않고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주 = 글·사진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 오늘부터 ‘우리 시대 무형문화재를 찾아’를 연재한다. 국가무형문화재가 젊은 이수자의 외면, 보유자의 고령화 등으로 총체적 전승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비록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역사회 어딘가에서 보유자와 이수자들은 각기 공예와 예능 분야에서 무형문화재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문화일보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전승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현장을 찾아 그 가치의 현재성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