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립한글박물관의 ‘명필을 꿈꾸다’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나라의 예서(隸書·왼쪽)와 전서(篆書)가 각기 쓰인 추사 김정희의 임서 족자를 살펴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한글박물관 ‘명필을 꿈꾸다’ 展

김정희·오세창 등 서예가들
글씨 연마했던 ‘임서’ 전시
조선왕실 한글 궁체 유물도

청나라 임서展도 동시 진행
韓·中 유물 120여점 선봬

‘마천십연 독진천호(磨穿十硯 禿盡千毫)’. 조선 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친구 권돈인(權敦仁·1783∼1859)에게 쓴 편지에 담긴 글귀다.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나는 70 평생에 벼루 열 개를 구멍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서체라는 추사체(秋史體)를 창안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연상되는 편지글이다. 명필이 되려면 무수히 노력해야 했는데,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옛 글씨를 따라 쓰는 ‘임서(臨書)’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정희가 곽유도비(郭有道碑)를 보고 임서한 글씨. 곽유도비는 후한의 학자 곽태(郭泰)의 비(碑)로, 채옹(蔡邕)이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영남대박물관 소장

임서란 법첩(法帖·옛사람들의 필적을 탁본해 글씨를 익히거나 감상할 목적으로 만든 서책)을 옆에 두고 이것을 보면서 쓰는 것을 말한다. 추사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추사를 비롯한 조선 후기 서예가들의 주요 임서 작품 및 조선 왕실의 한글 궁체 임서와 습자 자료를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명필을 꿈꾸다’전을 2019년 1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수원박물관의 소장품인 오세창(1864∼1953) 등 근대 서예가들의 임서가 전시되며, 추사 말년의 예서와 전서 연구 현황을 알려주는 간송미술관의 ‘한전잔자’(漢篆殘字·한나라 전서를 모아 쓴 김정희 글씨), ‘전의한예’(篆意漢隷·한나라의 예서를 전서를 생각하며 쓴 김정희 글씨), 영남대학교박물관의 ‘곽유도비 임서’ 등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조선 왕실에서 글씨를 대필한 궁인인 서사상궁(書寫尙宮)이 가지런한 한글 궁체를 연습한 유물도 선보인다.

박물관의 유호선 연구관은 “서예 전시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작품 옆 설명을 줄이고, 디지털 영상물과 별도 설명문을 마련했다”며 “한글과 한자 서체를 따라 쓰는 체험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끝을 벽에 대면 글씨가 써지는 과정을 담은 인터랙티브 영상도 설치돼 있으며 서체사의 변화를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별로 글씨가 담겨 있다.

이와 함께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해 중국 산둥(山東)박물관과 맺은 ‘문화교류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 따라 청나라 서예가들의 임서를 소개하는 ‘청인의 임서’ 전시도 열고 있다. 전시에는 청나라가 명나라의 서예 전통을 이어받아 법첩으로 글씨를 임서하고, 고증학을 기반으로 비석 글씨를 연마하는 비학(碑學)의 발전 과정이 소개된다.

청나라 문신인 왕탁(王鐸·1592~1652)이 왕희지 아들 왕헌지(王獻之)의 경조첩(敬祖帖)을 따라 쓴 작품, 강여장(姜如璋)이 왕희지가 남긴 ‘상우첩(上虞帖)’을 베낀 글씨가 공개됐다. 원본과 임서 글씨가 나란히 선보여 이해를 돕고 있다.

전시에는 우리의 국보에 해당하는 1급 문화재를 포함해 중국 유물 23건 30점과 한국 유물 71건 90점이 나왔다.

국립한글박물관 박영국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앞선 서예가들의 글씨 연마 노력과 이상을 느끼는 동시에 ‘따라 쓰기’라는 임서의 현대적 계승을 모색해 한글 서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시 의의를 밝혔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