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5도와 북방한계선(NLL)의 전략적 중요성은 남북대화를 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이 지역이 취약해지면 서해 5도는 물론 수도권의 옆구리가 적의 기습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반대로 북한엔 ‘목에 들이댄 비수’와 같다. 그러기에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했고, 국군은 피로써 사수해 왔다. 긴장 완화나 군축 논의가 이뤄져도 확고한 보완책 없이 방어력을 약화해선 안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방어 태세를 허무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지금도 NLL을 부인하면서 북측이 설정한 경계선을 토대로 남측 선박과 함정을 위협하고 있는데, 군은 이곳에서 중요한 훈련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대한 군사력 훼손 행위다. 남북 간 군사합의 자체의 문제점도 심각한데, 그 시행일(11월 1일) 몇 달 전부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북한이 NLL을 인정하면서 NLL을 중심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공동어로구역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며 “굉장한 대전환”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4일에도 NLL 남쪽 해상의 해군 함정을 향해 ‘우리 수역’을 침범했다고 통보해온 사실이 16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밝혀졌다. 북한은 지난 7월 5일부터 9월 28일 사이에도 20여 차례에 걸쳐 ‘남측 선박이 경비계선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5도 지역에서 지난 4월부터 K-9 자주포·천무 다연장로켓·스파이크 미사일의 사격 훈련이 중단됐고, 한·미 연합 해병대 훈련(KMEP)도 실시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남북 군사합의로 11월부터 남측 덕적도에서 북측 초도 사이 135㎞ 지역에 설정된 서해 ‘완충 수역’에서 포 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이 중단될 예정인데, 이미 6개월 전부터 훈련을 중단해 온 셈이다. 국방부는 병사들이 육지로 나와 사격 훈련을 한다고는 하나,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로 현지 지형과 분위기에서 실제 사격을 하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서해 5도·NLL 지역은 기습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곳이기에 무기·지형 친숙도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는 입으로만 NLL 수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사실상 NLL을 무력화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재고해야 한다. 북한이 NLL을 문서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북 군사합의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