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檢총장 등 무혐의 처분하고
법관엔 줄줄이‘직권남용’씌워

법조계 “적용범위 자의적 판단
정치보복으로 악용될 수 있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놓고 검찰과 법원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직권남용을 입맛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검찰이 지난 9일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던 전 검찰총장 등에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이 나온 뒤 논란이 더 불거지는 기류다.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고위 법관들에 대해서까지 직권남용 프레임을 걸고 있는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11일 법조계에서는 박지원(전 문화관광부 장관) 민주평화당 의원이 2006년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당시 권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내놓은 소수의견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박 의원의 청구는 8대 1로 기각됐지만, 권 전 재판관이 밝힌 의견이 ‘적폐청산 작업에 직권남용을 악용하는 사정 정국’을 꿰뚫어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 전 재판관은 “공무원의 직권은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넓어진다”면서 “정권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당시 활동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권 전 재판관은 또 “(직권남용의 모호성은) 국정운영 과정에서 행해진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 악화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직권남용의 ‘반(反)명확성’은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검찰이 지난 9일 강원랜드 의혹에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 판사는 “검찰 입맛대로 적용 가능한 현행 직권남용죄에 명확한 기준을 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에서도 직권남용 프레임을 짜는 것은 법원의 조직구조와 문화를 오해한 탓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판사는 “직권남용죄란 어떤 사안에 대해 권한이 있을 때 그것을 남용할 경우 처벌하는 것인데, 법원행정처 처·차장이나 심의관들은 대법관이나 일선 판사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결론을 내달라’고 개입할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