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미숙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시대 백악관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다룬 밥 우드워드의 저작 ‘공포(FEAR)’와 미 고위당국자의 뉴욕타임스(NYT) 익명 칼럼 기고 후 워싱턴이 온통 벌집 쑤신 듯한 분위기다. 우드워드의 ‘공포’는 백악관의 난맥상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고, 국정 현안 및 민감한 외교 사안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번복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NYT 칼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가 미국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정헌법 25조 발동 문제까지 제기됐다고 공개했다.

수정헌법 25조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계기가 돼 마련된 것으로, 1965년 의회 통과 후 1967년 비준됐다. 총 4개 항으로 구성됐는데, 제1·2항은 대통령·부통령 유고 시 승계자 규정이고, 제3항은 대통령이 자기 뜻에 따라 면직·복직을 원할 경우의 절차, 제4항은 대통령 본인 의사와 달리 물러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3항에 따라 2007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결장 검사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딕 체니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겼다가 복직한 바 있다. NYT 칼럼에 따르면 백악관 내 ‘트럼프 저항군’들이 검토한 것은 바로 제4항이다. 대통령이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때, 부통령과 각료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상원 임시의장과 하원의장에게 대통령 직무정지 관련 서면 성명을 송부하면 대통령은 면직된다. 대통령이 반발할 경우엔 상·하원 표결 등 복잡한 절차가 따르지만, 이 조항은 행정부 내의 ‘탄핵 발의’에 해당하는 셈이다.

핵심은 대통령의 국무 불능 상태를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총체적 불안정성에 대해선 이미 연초 마이클 울프가 ‘화염과 분노’에서 폭로하며 논란이 됐다.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 등 미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27명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에서 “의사가 비밀유지의 신뢰를 깨고 동의 없이 개입해도 되는 때는 매우 위급한 상태인데, 미국이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편집증과 공감 장애 등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라고 지적했다. 제4항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거론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 정치의 혼란상을 예고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