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불법(不法) 시위를 벌인 주최 측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손해배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재판부의 강제 조정안을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간의 입장과 앞뒤가 맞지 않고 공권력의 법치 의지도 의심케 한다. 불법 시위대에 의해 경찰 버스·장비가 파괴되고 경찰관이 부상하는 등으로 인한 피해 비용을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결과도 초래하게 됐다.

지난 2015년 세월호 집회 뒤 경찰은 시위대 폭력으로 경찰관이 다치고 장비가 파손됐다며 7780만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 6월 7일 경찰과 집회 측의 민·형사 소송 포기, 상호 유감 표명, 소송 비용 각자 부담 등의 조정안을 제시했으나 경찰은 거부했다. 지난달 20일 재판부는 ‘금전 배상 없이 피고가 경찰 피해에 유감을 표하라’는 재조정안을 냈고, 경찰이 이의신청 마지막 날인 3일 수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의 두 차례 조정안도 법치 원칙에서 납득하기 어렵지만, 경찰의 수용은 더욱 어이없다. 지난 5월의 ‘최루액 살수’ 위헌(違憲)결정 등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그것은 1차 조정 이전의 일이고, 배상 포기 근거로도 부족하다. 관련 형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코드 법치’는 불법시위를 부추길 뿐이다. 경찰청의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최근 쌍용차노조 불법 점거 농성과 2015년 민중총궐기대회 주최 측에 대한 민사소송 취하를 권고했다. 이들 사건을 포함해 광우병, 한진중공업 시위 등 6건의 국가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불법 시위대와 공권력의 피해를 동렬(同列)에 놓고 상호 유감 표명과 소송 취하를 한다면, 법치국가를 포기하는 일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