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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폭염에 이은 태풍과 ‘철 아닌 장맛비’ 때문에 터앝 김장 배추 모종이 늦어지고 있다. 소일용 농사일망정 때를 놓치면 실농을 면할 수 없다. 전업농들의 걱정은 오죽할 것인가. 문제는 이 걱정이 올해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는 그 전망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21세기 후반이면 산간을 제외한 강원도와 경기 이남 지역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로 변할 것이라는….

그런 징후는 시장에서 벌써 시작됐다. 대중양판점은 물론 전통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콜라비와 치커리, 케일, 브로콜리에 이어 비트, 래디시, 크레송 등 다문화 이름이 분명한 채소들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양배추나 피망, 파프리카 등은 이미 동화 작물이 된 지 오래다. 채소만 그런 게 아니다. 과일 판매대도 마찬가지다. 토마토와 멜론, 오렌지, 레몬, 여주, 키위, 파인애플, 파파야가 당당히 자리 잡자 블루·블랙베리와 아로니아까지 재배 농지가 북상하면서 마트의 매대(賣臺)가 넓어지는 중이다. 수입 과일 바나나와 망고, 두리안, 구아버, 아보카도, 리치, 허니듀멜론 등도 머잖아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표기하게 되지 않겠는가.

열병 앓는 지구의 온난화는 바닷물도 데우는 중이다. 우리나라 연안의 해수 온도는 대부분 해역에서 28도를 넘어 사실상 아열대 바다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해역의 표층 수온은 약 1.23도 올랐다. 물고기들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최근 4년 동안 제주 연안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열대성 물고기가 어획 어종의 42% 이상이다. 가시복과 거북복에다 쏠배감펭과 홍감펭, 그리고 아홉동가리와 여덟동가리까지 이름도 낯선 아열대 물고기들이다. 쥐돔·호박돔·청줄돔·범돔 같은 낯선 이름도 들어 있다. 200여 년 전 실학자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는 없는 물고기만도 26종이나 잡혔다고 한다. 이 중 열대나 아열대에 서식하는 무리만 16종이나 된다.

기후변화는 날씨 변화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천양지차다. 채소·과일은 물론 생선까지도 재배·서식지를 바꿔 놓는다. 물론, 인체에도 알게 모르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24절기, 춘하추동이 뚜렷한 시대는 저물었다. 기상학과 의학·농학·수산학·생물학·해양학 및 언어학 등 유관 분야의 학제(學際·interdisciplinary)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