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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올해 이전까지만 해도 폭염(暴炎)은 재난 축에 끼지도 못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3조 1항에 규정된 재난은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조류 대발생, 조수, 화산활동, 소행성·유성체 등 자연우주물체의 추락·충돌’ 등으로 규정해놓았는데 폭염은 빠져 있다. 정부가 이번에 법 개정을 통해 폭염을 재난에 넣겠다고 한다.

미국 뉴욕대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저서 ‘폭염 사회’에서 1995년 7월 시카고에서 섭씨 41도의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연구했는데, 폭염에 따른 사회 비극을 결국 ‘정치의 실패’로 규정했다. 폭염으로 죽는 사람은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쓸쓸히 혼자서 더위를 이겨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우리나라의 폭염 사태도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대표적인 정책의 비현실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폭염의 정치학’이라고 불릴 만하다. 문 정부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 이후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조사와 신규 원전 4기의 건설 중단을 단행했다. 또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도 갑자기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냉방기 사용 급증으로 전력 예비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면서 국민은 탈원전 정책의 허구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폭염이 시작되기 전 지난 6월 18일 현대경제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4.6%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폭염 사태를 경험한 이후 지난 16일 원자력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71.6%가 원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 감사 결과 등을 통해 ‘적폐’로 규정된 4대강 사업도 폭염으로 인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시절 가뭄에 대비해 금강 공주보와 예당저수지를 연결하는 도수로 공사를 할 때 환경단체들은 “4대강 사업을 합리화한다”며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번 가뭄에 금강 물을 예당저수지로 흘려보내면서 농민들은 큰 시름을 덜었다. 심각한 가뭄에도 그나마 4대강 물 보존 효과 때문에 극단적인 재난은 피할 수 있었다. 국가를 운영할 때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선입견과 이념을 앞세운 일방적 정책이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