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은 근로시간과 양이 획일화된 전통적인 근로자상에서 벗어나 시공간적 측면에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모습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구글 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5) 근로의 변화와 일자리 정책 <끝>

일하는 방식·개념 근본적 변화
주40시간 등 기존규율 무의미
量보다 성과 규정할 제도 필요

獨 ‘산업 4.0’ 전략 발표하며
새로운 제도 ‘노동 4.0’ 제시
지속가능·행복한 일자리 초점

勞使, 협력적 운명공동체 진화
대립 벗어나 새관계 정립 시급
정부도 노동法·제도 보완해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무인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 토대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일자리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따른 근로자상(像)의 변화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근로자 개념에 토대를 둔 노동법적 보호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제1차 산업혁명이 ‘근로자’라는 사회적 요보호자를 개념화하고 그들에 대한 보호를 위해 노동법 체계를 구축했듯이 제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사회적 요보호자를 찾아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아산사회복지재단의 학술연구사업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정책의 미래: 법제도 정비 방안을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도움을 통해 현재의 노동법 규율체계를 재검토해 보고, 4차 산업혁명에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했다.

독일 경제에너지부와 교육연구부가 4차 산업혁명의 추진 전략으로 ‘산업 4.0(Industry 4.0)’을 발표하자, 연방사회노동부는 일자리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노동 4.0(Arbeiten 4.0)’을 제시했다.

노동 4.0은 미래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단순한 전망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노동에 대한 존중을 기본적인 관점으로 하면서 제조업 등에서의 스마트 공장화가 이뤄지면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하고 행복한 일자리를 만들고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독일이 노동4.0을 통해 제시한 방향은 바로 ‘좋은 노동’(Gute Arbeit)이다.

권 교수는 16일 “노동법 제도의 개편은 바로 이러한 일자리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이라며 “종래 전통적인 노동시장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제도와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인간 노동에 대한 존중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나름대로의 대안 제시”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노동을 ‘지속 가능’하면서도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의적·자율적 노동자의 변화 = 근로자의 노동력과 양이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는 전통 방식의 근로자상은 이제 바뀔 수밖에 없다. 독일 노동4.0의 근로자상은 첫 번째 ‘창의적 지식업무 종사 근로자’, 두 번째 ‘근로 방식에 관한 주도권을 가진 근로자’다. 근로자의 개념이 새롭게 구성되는 만큼, 규율 방식도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근로기준법은 초기산업단계 단순 직공 근로자 보호에 최적화된 체계를 갖췄지만, 획일적 노동 기준은 미래에 유용한 근로자 보호 수단이 될 수 없다. 즉 미래 노동시장에 대한 일자리 규율 체계는 산업 단위의 관행과 자율을 존중하는 노무공급계약법 체계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을 정해놓은 현행 근로기준법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관점에서 개선 여지가 있다. 근로시간은 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모습인 창의적·개성적 업무 수행을 고려하면 근로시간의 양을 통한 임금 산정보다는 노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성과를 획득했는지, 그 성과가 얼마나 획기적인지에 따라 임금 산정이 이뤄져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마찬가지다. 장시간 근로의 폐해를 막고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부합하지만,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의 획일성’이 문제다. 근로자가 스스로 최적의 근로시간과 근로 양을 결정하는 구조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근로자의 일하는 방식이다.

◇‘착취와 쟁취’의 노사 프레임도 극복 = 미래 노동시장의 변화는 집단적 노사관계에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노동조합의 단결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는 유사한 근로조건과 공동의 작업장이다. 근로조건이 비슷한 근로자들은 이해관계도 비슷했고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컸다. 근로조건도 같지 않고 근무 장소도 다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 개별 근로자들의 역량과 개성 그리고 창의성을 바탕으로 근로자마다 각기 다르고 고유한 성과를 도출하는 형태다. 미래 노동시장에서 대립적 노사관계를 탈피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은 단순히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계약적 의무이행 관계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노사가 사용자의 잉여이윤을 쟁취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운명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조직의 일원으로서 함께 발전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미래 일자리 위한 사회안전망 요구 = 노동시장의 디지털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보장 장치도 필요하다. 대표적 장치가 정신노동의 가치 인정이다. 디지털시대에는 정신노동이 갖는 의미와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과거 육체적 노동을 염두에 둔 노동 관련 법제도 체계를 개편해 정신노동에 대한 보호의 강화책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고령 근로자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보다 중시된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형성되는 디지털 노동시장은 연령과 무관하게 이전과는 다른 일하는 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오랫동안 근로자로서 삶을 통해 체득하게 된 경험, 직업적인 도덕성과 소양, 고도의 자부심과 성실성 및 이론적 지식, 이해력과 사고력 및 비판능력을 가진 고령 근로자는 디지털 노동시장이라 하더라도 경쟁력이 있다. 고령 근로자에 적합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고령 근로자가 디지털 노동시장에서 이탈되지 않는 제도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근속 연수를 고려한 임금체계는 고령자 고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하는 만큼 노동법상의 제반 규제를 고령자의 경우 대폭 완화할 필요도 있다. 고령자 고용에 대한 재정적 지원 강화도 고려 사항이다. 독일의 경우 고용장려금을 지급해 노동시장에서 취업이 어려운 근로자를 고용한 경우 사용자에게 일정 기간 임금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