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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前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경제의 수장이 구설수를 무릅쓰고 재벌기업을 찾아가다니…. 정부의 모양이 빠지게도 생겼다. 총수들이 머리 조아리게 만들고 재판정에도 세워서 지지자들에게 ‘사이다 맛’을 선사했던 정부다. 대통령이 직접 가지는 않지만, 총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다. 성질 같으면 ‘투자(投資) 명령’이라도 발하고 싶겠지만, 시장경제라 그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다.

부총리가 찾아갔다고 새로운 투자가 생겨날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투자는 돈 벌 가능성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정부 눈치 때문에 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미 부총리의 방문을 받았던 기업들은 기왕에 계획돼 있던 투자들을 취합해 발표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정권에 잘 보인답시고 수익성도 없는 투자를 일부러 만들어냈다면 더 큰 일이다. 그런 기업이라면 부도에 한 발짝 다가선 셈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한국을 떠나서 다른 곳에 둥지를 트는 편이 낫다.

찾아다닌다고 투자가 느는 것이 아님을 이 정부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러는 것은 어려운 경제를 위해 뭔가 하는 시늉이라도 내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기업의 투자를 늘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투자의 결실을 뺏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면 된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투자를 해?’ 하는 생각이 기업계에 짙게 깔렸다. 그 걱정을 덜어주면 투자들이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정권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벌 기업의 것은 뺏어도 된다는 생각이 이 정권 곳곳에 배어 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삼성의 이윤 20조 원을 200만 명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당장 그러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얼마든지 그런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같으면 위헌소송이라도 내보겠지만, 개헌(改憲)까지 할 기세이니 헌법조차도 보호의 수단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국민연금이 거의 모든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로 등장한 마당에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나왔다. 이제 정권과 ‘코드가 맞는’ 교수들, 시민단체 운동권 인사들, 민노총 등 노동계 인사들이 기업의 이사회 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시작은 총수에 대한 견제이겠지만 차츰 총수의 무력화로 옮아갈 것이다. 재벌 개혁의 궁극적 목표가 총수의 무력화이니 말이다.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등의 규제들도 비슷한 성격이다. 이들을 준수하자면 기존 계열사의 상당 부분을 떼어 팔아야 한다. 삼성 같으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대부분을 매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는 기업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하겠지만,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상황이 이러한데 총수들이 투자에 열성을 내겠는가.

이런 분위기와 규제들을 없애줘야 투자가 살아날 텐데,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재벌 체제를 변혁하라는 ‘촛불의 명령’을 어기는 셈이 된다. 재벌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민노총과 참여연대와 다른 지지 세력을 배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를 추진했다. 문 대통령도 지지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살려내려 할까. 아니면 투자야 되든 말든 정권의 존재 이유에 집착할까. 희망은 실낱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