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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문학동네

미모의 작가 가와카미가 질문하고
하루키가 답한 ‘집필 비법’ 담아

제목과 인칭 정하는 도입부 단락
이야기 한토막 정해지면 ‘스타트’

草稿때 사실관계 확인 안 중요해
다소 거칠더라도 먼저 리듬 타야

‘기사단장…’ 10개월만에 ‘1稿’
하루 10장씩 매달 200장 원고써

저자인 가와카미 미에코(川上未映子·42)를 지난 5월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적이 있다. 제31회 지용제의 정지용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길이었다. 가와카미와 김치 삼겹살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9)에까지 미쳤다. 미모의 가와카미는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10여 년 전 한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작가 대 작가로서 하루키를 처음 만났고, 2008년 ‘젖과 알’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뒤 후배 칭찬에 인색한 하루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당시 그는 “지난해 하루키를 인터뷰한 대담집이 곧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다.

가와카미가 질문하고 하루키가 대답한 것이다. 2015년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출간 이후 한 번, 2017년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이후 세 번의 인터뷰가 4장에 나뉘어 실렸다.

가수 출신으로서 문학적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핫’한 여성작가와 일본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만남이라는 구도만으로도 구미가 확 당기는 책이다. 하물며 2년간 네 차례에 걸친 ‘롱 인터뷰’를 통해 하루키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가와카미는 독자들이 그동안 하루키에 대해 궁금해했을 법한 것들을 빠짐없이 짚었다. 우선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말했듯이 하루키의 집필 방식. 하루키는 사전에 어떤 구상도 없이 일단 글을 시작한다고 했다. 장편인 경우엔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듯이 초고를 쓴다는 것이다. 초고를 쓸 때는 사실관계의 확인 등은 중요하지 않다. 거칠더라도 먼저 리듬을 타야 한다. 그리고 결말까지 쓴 후에 고쳐 쓰기를 반복한다.

원고지 2000장 분량이 넘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하루키는 2015년 7월부터 닥치는 대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16년 5월에 ‘1고’를 완성했다. 하루에 10장씩 매달 평균 200장 정도의 원고를 10개월 동안 쉬지 않고 쓴 것이다. 그리고 그해 9월 편집자에게 처음 원고를 보낼 때까지 5번, 인쇄된 원고가 나온 후 다시 5번의 교정을 거쳐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교하게 짜인 스토리와 장면의 디테일을 아무 준비 없이 한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하루키는 “물론 최소한 3가지 요소는 정해져야 스타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건 소설의 모든 것을 집약해놓은 제목, 인칭을 정하는 도입부 단락, 그리고 꼭 집어넣고 싶은 어떤 이야기 한 토막이다. 하루키는 “일본 19세기 괴담 소설인 ‘이세의 인연’의 우물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득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리 써두었던 ‘그해 5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나는 좁은 골짜기 어귀 근처 산 위에 살았다’라는 도입부를 버무림으로써 소설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적 재능은 노력보다는 천부적인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는 “나는 절대 예술가 타입이 아니다. 재즈 카페까지 운영했던 보통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야기를 계획 없이 쓰는 비결은 기다림이다. 내 머릿속에 뭔가가 충분히 떠오를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린다”면서 “다만 문체만큼은 다른 쪽에서 와주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좋은 문장을 쓰는 것, 내 문체를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날마다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키가 어떻게 소설 작업을 하는지 궁금한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 덤으로 가와카미라는 아직은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의 인터뷰 솜씨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더욱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길고 예리한 질문 공세에 식은땀을 흘렸다는 하루키는 “가와카미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터뷰어와도 다른 종류의 질문을 정면에서 던져왔다. 그런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는 사이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와 풍경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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