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브루흐잘에 위치한 전기모터 제조업체 ‘SEW-EURODRIVE’ 본사 회의실에서 안드레아스 콜 매니저가 ‘인더스트리 4.0’을 적용한 이후 성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사물인터넷을 통해 생산기기와 생산품 간의 정보교환 등 자동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과정을 최적화하는 산업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을 골자로 하고 있다.

(1) 기술의 발전, 일의 미래

“10년 내 직업 3분의 1 소멸”
“자동화로 5억∼8억개 창출”
일자리 비관론·낙관론 팽팽

시대 따라 산업 변화 불가피
‘생겨날 일자리’ 초점 맞춰야

獨 ‘산업 4.0’ 스마트공장
“시간 60%↓, 생산성 20%↑”
인력 안 줄이고 ‘충분한 고용’

삶의 질 높아져 새 수요 생겨
“2030년 일자리 8억개 생성”

현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4차 산업혁명’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한 차세대 산업혁명을 의미하는 4차 산업혁명의 화두 속에는 지금보다 풍요로운 미래의 모습을 꿈꾸는 기대감도 크지만, 이면에는 첨단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밀려난다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가상현실, 빅데이터 등의 첨단 신기술이 융합되면서 산업 규모도 더 커지고 인류의 편리함도 비약적으로 늘어날 테지만, 상대적으로 필요 없는 산업은 물론 관련 분야 일자리가 대체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들도 고민되는 상황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정책 1순위인 일자리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이 위기인지 기회인지 분석을 원하는 목소리들이 꾸준하다.

문화일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일자리’를 주제로 앞으로 5회에 걸쳐 대한민국의 상황을 분석해 우리에게 맞는 전략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니라 충분한 고용을 하게 합니다.”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브루흐잘. 4차 산업혁명의 제조혁신을 도입한 전기모터 제조 업체 ‘SEW유로드라이브(SEW EURODRIVE)’의 안드레아스 콜 매니저는 이같이 말했다. 콜 매니저는 “독일의 인더스트리(Industry) 4.0은 인간, 기술, 정보기술(IT)을 적절하게 조합해 스마트공장을 만들게 했다”며 “새로운 기술이 접목돼 생산시간이 60% 정도 줄었고, 생산성은 20% 늘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학술연구사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진화’를 연구한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은 2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풍요의 시대에는 인간의 미충족 욕구가 산업의 방향과 내용을 주도하게 될 전망”이라며 “이제 질문의 핵심은 어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일자리는 진화 중”이라며 “일자리에 대한 기존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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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다?=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변화 분석은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 관점에서 주로 논의돼 왔다. 지난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는 향후 5년간 719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영국의 옥스퍼드대는 미국 일자리의 47%가 20년 내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시장전문 조사기관인 가트너 역시 AI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하면 10년 안에 전체 직업의 3분의 1이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일자리에 대한 위기감은 ‘노동 총량 불변의 법칙’에 근거하고 있다. AI가 대체하는 직업들이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 이사장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이 이사장은 “무한한 인간의 욕구로 인해 노동 총량 불변의 법칙은 오류라는 점이 입증돼왔다”고 지적했다. 2012년 2월 테크넷(TechNet)은 앱 경제가 최근 5년간 미국에서 46만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2011년 9월 발표된 미국 메릴랜드대의 ‘페이스북 앱 경제(The Facebook App Economy)’ 보고서는 7억5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최소 121억9000달러 이상의 경제효과와 18만2744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IDC는 2021년이면 AI 기반 고객관계관리(CRM)가 8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전망했고, 맥킨지 연구소 역시 자동화로 2030년 전 세계의 일자리가 5억555만∼8억9000만 개 생성된다고 발표했다.

◇욕망 통해 진화하는 일자리=KCERN 연구팀에 따르면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고 단지 진화해왔다. 지난 250년간의 산업혁명 역사를 보면 확연해진다. 이러한 진화는 단순히 기술 혁명을 넘어 인간의 욕망을 새로운 기술이 충족시킨 과정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KCERN 연구팀은 맥킨지 연구소가 2014년에 발표한 인구증가율(1000∼2008년)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상관 분석 연구에 주목했다. 연구팀이 당시 연구를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인 매슬로 욕구위계이론을 적용해 재해석한 결과, 1차 산업혁명기에는 인구증가율이 GDP 증가에 비례했다. 2차 산업혁명기에는 인구증가율의 증가가 GDP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1차 산업혁명기의 영향만큼은 아니었다. 주목할 부분은 3차 산업혁명기로 이 시기에는 인구증가율이 감소했는데도, GDP가 오히려 증가했다. 즉 인구증가율과 GDP 성장률이 반드시 비례 관계가 아니었는데, 그 차이는 바로 물질적 여유인 안정으로 인한 욕구 충족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GDP 성장률에 인간의 욕구(소비 및 욕망)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애선 KCERN 책임연구원은 “산업혁명들은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증가로 삶의 질을 끌어올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왔다”며 “즉 ‘생산성 향상의 기술’이 일자리를 파괴하고 ‘욕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술’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적 파괴과정 속에서 일자리는 오히려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3차 산업혁명기까지 결핍의 시기에는 공급 주도의 기술이 일자리의 원천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는 풍요의 시기에는 수요 주도의 욕망이 일자리를 생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3대 안전망 바탕의 일자리 선순환 이뤄야=이처럼 성장을 위한 혁신은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파괴하고 창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이며 구조 조정이지만, 파괴되는 일자리는 개인 삶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일자리는 사회보장제도와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복지재정을 재정적자로 설계하면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이사장은 “국가는 생존 욕구를 직접 지원해야 하지만 일자리를 직접 지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 사회의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다”며 “실패를 지원하는 것이 혁신의 안전망으로, 정직한 실패를 지원하면 창업가가 늘어나고 사회 혁신이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억지로 공무원 일자리를 만드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으로 기업의 일자리가 파괴될 수 있다”며 “세금을 통해 만든 일자리는 세금이 고부가 가치를 만들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3대 안전망(혁신 안전망, 사회 안전망, 일자리 안전망)을 바탕으로 한 선순환 일자리 정책을 제안했다. 이를테면 혁신의 안전망을 통해 직무와 직업 유연성, 규제 개혁, 실패를 지원한다. 또 사회 안전망으로 최저 생활 보장과 AI 효율화 및 블록체인 투명화를 이룬다. 그리고 일자리 안전망을 통해 재교육과 유연 근무를 추진한다. 이 이사장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장기적으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의 궁극적 모습이 재정립돼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의 위기를 기회로 잡기 위해 국가는 3대 안전망의 선순환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길 제언한다”고 말했다.

브루흐잘 = 글·사진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