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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계곡 물가에는 여러 종의 나무들이 즐비하다. 그중엔 ‘물푸레나무’도 있다. ‘물푸레나무’는 습한 곳을 좋아해 골짜기 물가에서 특히 잘 자란다. 키가 크고, 무엇보다 회갈색 나무껍질에 잿빛을 띤 흰 빛깔의 가로무늬가 선명해 눈에 잘 띈다.

물푸레나무의 껍질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약재로 쓰였다. 15세기 초의 향약서(鄕藥書)인 ‘향약구급방’에도 ‘수청목피(水靑木皮)’라 소개돼 있을 정도다. 여기서 ‘水靑木’은 한자어가 아니라 우리말 ‘믈프레나모’를 한자의 훈(訓)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차자(借字) 표기 형태인 ‘水靑木’을 한자어로 오인해 ‘물푸레나무’의 어원을 이것에 기대서 풀기도 하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물푸레나무’의 어원은 당연히 ‘믈프레나모’에서 찾아야 한다.

‘믈프레나모’는 ‘믈프레’와 ‘나모(木)’가 결합한 어형이며, ‘믈프레’는 ‘믈’과 ‘프레’가 결합한 어형이다. ‘믈’은 ‘水’의 뜻이고, ‘프레’는 형용사 어간 ‘프르-(靑)’에 접미사 ‘-에’가 결합한 어형이어서, ‘믈프레’는 ‘물을 푸르게 하는 것’이란 의미를 띤다. 물푸레나무의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나와 물 전체가 푸르게 변하기에 ‘믈’과 ‘프르다’를 이용해 나무 이름을 만든 것이다. ‘믈프레’ 자체가 나무 이름이어서 ‘믈프레나모’는 그것에 ‘나모’를 덧붙인 잉여적 어형이다.

나무 이름 ‘믈프레’는 제1음절에서 ‘ㄹ’이 탈락해 ‘므프레’로, ‘므프레’는 제1음절의 모음이 원순모음화해 ‘무프레’로, ‘무프레’는 제2음절의 모음까지 원순모음화해 ‘무푸레’로 변한다. ‘믈프레나모’ 또한 ‘믈프레’의 변화에 따라 ‘므프레나모’ ‘무프레나모’를 거쳐 ‘무푸레나무’가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푸레’와 ‘무푸레나무’를 표준어로 삼아야 하나, 현대국어에서는 ‘물푸레’와 ‘물푸레나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어원을 밝혀 적은 어형을 표준어로 정한 것이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