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영미(맨 왼쪽) 작가가 패트론 모임인 ‘지우문화아카데미’ 회원들과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단색화열풍 꺼지며 매출 급감
위축된 미술시장 새 활력으로

김영미 ‘지우문화아카데미’
오차드 갤러리 ‘패트론 클럽’

10여명 회원들 후원금 지원
문화살롱 역할로 작가에 영감

국내 미술 시장의 어려움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부터 달아오른 ‘단색화’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위축되고 있는 데다, 1000억 원대 ‘큰손’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이 지난해 사퇴하며 인사동이나 삼청동 화랑가에 활력이 떨어진 지 오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얼마 전 내놓은 2017 미술 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화랑과 경매회사 아트페어 통틀어 2008년의 경우 전체 매출액이 4500억 원대에 이르렀지만 2016년 3900억 원대로 뚝 떨어졌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그림 등 작품 거래가 활발해야 한다. 작품 판매가 요원해질 경우 작가로서 창작 의욕이 상실되고 작업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계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자생적인 패트론(Patron) 모임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화단에 생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패트론이란 문화예술 애호가, 후원가란 뜻을 지녔다. 르네상스기만 놓고 볼 때 이탈리아의 명문 메디치가와 프랑스의 퐁파두르 부인이 대표적인 패트론으로 통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세계적인 거장의 탄생도 패트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기법에 의한 독특한 인체 표현으로 뒤틀리고 해체된 인간 내면을 탐구해온 김영미(57) 작가는 11년 전부터 ‘지우문화아카데미’라는 패트론 모임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지우(只宇)’는 김영미 작가의 아호다. 모두 12명의 회원이 월 20만 원씩을 추렴하는데 이를 총무에게 전달하면 총무가 후원금을 모아 작가에게 지원한 후 월말에 작품을 한 점씩 가져가게 된다. 작품은 12명의 회원이 순번을 정해 갖게 된다. 회원은 전업주부부터 교사, 변호사, 대학교, 사업가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패트론 모임의 이 같은 지원에 힘입었기 때문인지 김영미 작가에 대한 국내외 화단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김 작가는 오는 29일까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갤러리 ‘스페이스 776’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김 작가는 “많은 분의 애정 어린 관심이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거나 적당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 오늘의 저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모임은 김 작가에 대한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문화 살롱으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한다. 매월 회원들은 서울 마포구 성산2동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사목헌(思牧軒)’이나 시내 갤러리에서 모이고, 모임에는 외부 강사가 초빙돼 예술 관련 인문학 강의를 한다. 지난달에는 임승빈 명지대 교수의 ‘일본문화와 영화’라는 강의가 마련됐다.

갤러리를 중심으로 신진 작가 지원에 나선 패트론 모임도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오차드 갤러리가 주관하는 ‘오차드 패트론 클럽’이 바로 그것. 정기적인 미술 작품 소장을 통해 미술인 후원 및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며 회원 간 상호 친교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지난해 7월 만들어져 현재 12개월째 진행 중이며 다음 달인 7월 1기가 끝나고, 회원들의 만족도가 높아 1기 멤버 그대로 2기도 진행될 예정이다. 회원은 모두 13명이며 월 1회 일정 금액을 납입, 모임이 있는 당일 낙찰금으로 구매한 작품을 추첨을 통해 받는다. 일종의 낙찰계인 셈이다. 이 모임 역시 문화살롱 역할을 겸하고 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미술사 강의가 마련되고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준비된다. 그동안 최영욱(서양화), 이동재(서양화), 김양수(한국화), 김승영(설치), 강홍구(사진), 최준근(서양화) 작가 등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오차드 갤러리의 이명지 관장은 “예술은 작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관객과 함께하는 것”이라며 “작품을 소장하는 작은 행동이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위대한 소비가 돼 우리 사회를 따뜻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